
의료인이 둘 이상의 의료기관을 개설·운영한 것은 1인 1개소법을 위반했지만 사무장병원과 달리, 요양급여비용을 환수할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1인 1개소법을 위반했지만 건강보험법상 ‘속임수나 그 밖의 부당한 방법’으로 보험급여를 받았다고 보는 건 무리가 있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서울행정법원은 유디치과 관계자 14명이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요양급여비용 환수처분 취소 소송에서 건보공단의 환수처분을 취소하라고 선고했다.
2000년경 유디치과를 최초 설립한 치과의사 A씨는 자신의 자금으로 물적 설비를 갖추고 명의 원장과 동업계약을 체결해 명의 원장에게 급여를 지급하는 조건으로 유디치과를 운영했다.
그리고 병원경영지원회사, 치과재료 공급업체, 인테리어 업체 등을 설립해 친인척을 대표자로 내세워 운영하면서 유디치과 각 지점과 거래하게 해 수익금을 취득했다.
A씨는 1인 1개소법이 만들어지면서 외형상 지점 원장들과의 동업관계를 해지하고 A씨가 소유하거나 임대하고 있는 유디치과 지점의 점포를 임차하거나 전차하는 계약을 통해 점포를 양수하는 형식을 취한 후 병원경영지원회사를 통해 경영지원 서비스만 제공했다.
실제로는 A씨와 유디의 관계자들이 지점의 명의원장들에게 일정 급여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각 지점을 개설·운영했으며, 원고들은 A씨 및 유디 등 관계자들이 둘 이상의 의료기관을 개설·운영한다는 사정을 알면서도 일정한 급여를 보장받는 조건으로 고용돼, 각 병원을 개설·운영함으로써 A씨 및 유디 등 관계자들과 순차 공모해 둘 이상의 의료기관을 개설·운영했다.
건보공단은 2015년 11월경 서울중앙지방검찰청으로부터 원고들에 대해 의료법 제33조 제8항 위반을 이유로 공소제기, 약식명령청구 또는 기소유예의 불기소처분을 했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에 건보공단은 의료법 제4조 제2항 내지 제33조 제8항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요양급여비용 환수결정을 통보했다.
현행 의료법 제4조 제2항은 ‘의료인은 다른 의료인의 명의로 의료기관을 개설하거나 운영할 수 없다’로 규정하고 있고, 제33조 제8항은 ‘의료인의 어떠한 명목으로도 둘 이상의 의료기관을 개설·운영할 수 없다’고 규정, 이를 위반한 경우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원고들은 “A씨는 의료법 제33조 제8항이 개정된 이후 2012년 6월경 유디치과 각 지점의 명의원장들과 유디치과 각 지점에 관한 동업계약을 해지했고, 이후 각자 명의로 개설한 병원에서 직접 의료행위를 하고, 병원 관리를 했으므로 의료법 제33조 제8항을 위반해 각 병원을 개설·운영했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 이들은 “의료법 제33조 제8항을 위반해 각 병원을 개설·운영했다고 하더라도 각 병원은 의료인이 개설한 병원으로 요양기관 당연지정제에 따라 국민건강보험법상의 요양기관에 해당한다”며 “비의료인의 의료기관 개설의 경우 무자격자의 의료행위로 인해 국민건강에 중대한 위험을 발생시키는데 비해 의료인의 의료기관 이중개설은 그 불법성이 작아 요양급여비용의 수급자격이 없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소를 제기했다.
재판부는 건보공단의 환수 처분을 취소하라면서 원고들의 손을 들어줬다.
먼저 재판부는 “A씨는 현재 병영경영지원회사의 주식을 94% 소유하고 있는 대주주”라며 “이 병원경영지원회사는 유디치과 각 지점의 사업용 계좌, 비밀번호 등을 기재한 자료와 지점별 담당자 내역 등의 자료를 갖고 각 지점 계좌를 관리하고 있었으며, 대표원장에게 생활비 명목으로 급여를 지급하고, 각 지점 대표원장을 관리했다”고 밝혔다.
이어 재판부는 “A씨는 2012년 6월경 유디치과 전 지점에 관해 동업계약을 해지한 후에도 관련 회사를 통해 각 병원 등 유디치과 각 지점의 인적·물적 설비를 관리하면서 의사들의 의료행위에 개입했을 뿐만 아니라 지점의 수익을 사실상 자신에게 귀속시키는 등 각 지점을 실질적으로 운영했다”며 “원고들은 이 사건 각 병원의 형식상 개설명의자에 불과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해, 의료법 제4조 제2항, 제33조 제8항 위반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의료법 제4조 제2항과 제33조 제8항을 위반했다는 사정만으로 의료법에 따라 개설된 의료기관에 해당하지 않는다거나, 이들이 보험급여 비용을 지급받은 것이 국민건강보험법 제57조 제1항의 속임수나 그 밖의 부당한 방법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의료법에 따라 개설된 의료기관이란 의료법에 따라 적법하게 설립된 의료기관만을 의미한다는 건보공단의 주장에 대해 재판부는 “이렇게 해석할 경우 의료법 제36조에서 정한 시설기준 중 경미한 위반행위가 있음을 간화하고 행정청이 의료기관 개설허가를 하거나 신고수리를 한 경우까지 모두 무효하고 보게 돼 요양기관의 범위가 지나치게 축소되는 결과가 발생하고 당연지정제 방식의 취지에 반한다”고 전했다.
이어 “의료기관이 실질적으로 유효한 요양급여를 한 경우에도 요양급여를 받을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해 의료기관에게 지나치게 가혹하다”며 “개설과정의 중대·명백한 하자에 의해 당연무효가 아닌 한 의료법에 따라 개설된 의료기관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한다”고 판시했다.
또 재판부는 “의료법 제4조 제2항과 제33조 제8항 위반(의료인 개설)은 의료법의 기본 목적상 원칙적으로 허용할 수 없는 의료법 제33조 제2항(비의료인 개설, 사무장병원)과 불법성 측면에서 본질적인 차이가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의료법 제33조 제2항 위반 사실을 수사기관의 수사결과로 확인한 경우 해당 요양기관이 청구한 요양급여비용의 지급을 보류할 수 있고, 개설자에게 연대해 징수금을 납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 반면에 의료인의 복수 병원 개설·운영을 규정한 의료법 제33조 제8항에 대해서는 이와 같은 규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재판부의 설명이다.
여기에 재판부는 “의료인에 의한 중복개설은 정보의 공유·의료기술의 공동 연구 등을 통한 의료서비스 수준 제고, 공동 구매 등을 통한 원가절감 내지 비용 합리화 등 순기능 측면이 존재함에도 이를 금지한 것은 의사가 수개의 의료기관을 소유함으로써 수익을 얻어 영리법인에 준하는 형태를 가지게 되고, 국민건강 보호라는 공익보다 영리를 추구할 수 있어 이를 방지할 필요가 있다는 정책상 이유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의료법 제4조 제2항과 제33조 제8항을 위반해 개설된 의료기관의 경우 개설허가가 취소되거나 의료기관 폐쇄명령이 내려질 때까지는 요양급여를 실시하고, 보험급여비용을 건보공단으로부터 받는 것 자체가 법률상 원인없는 부당이득이 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번 판결에 대해 유디치과 측은 “법원이 네트워크 병원과 사무장병원의 본질적인 차이를 인정한 것”이라고 평가하며 “향후 1인1개소법 관련 재판에서도 유디치과가 적법하게 운영되고 있음을 명백하게 밝힐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한 “법원이 정책상의 이유로 개정되었지만 정보의 공유, 의료기술의 공동연구 등을 통한 의료서비스 수준 재고, 공동구매 등을 통한 원가절감 내지 비용의 합리화 등의 측면이 존재한다며 네트워크병원의 순기능에 대해 일부 인정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반해 건보공단 법무지원실 김준래 변호사(선임전문연구위원)은 “주식회사가 의료기관 개설비용을 모두 부담하고, 물적 설비를 통제 관리하며, 의료기관의 수익을 이동시킨 사실들을 모두 인정하면서도, 공단은 요양급여비용을 지급하라는 판단을 한 것으로, 부당한 판단”이라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이는 주식회사가 의료기관을 개설 운영할 수 있다는 의미로, 사실상 영리병원을 허용해 주는 판단을 한 것”이라며 “앞으로 주식회사들은 명목상 의료인을 내세워 배후의 경영자라고 주장하며, 의료기관들을 개설 운영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그는 “이 사건의 경우 배후의 실질적인 의료기관 개설 운영자가 비록 의료인이라고는 하나, 음성적으로 개설한 의료기관의 수가 무려 120여개에 이르고, 의료기관 개설 운영 방법도 주식회사가 사실상 운영하고 수익을 착취하는 방법을 이용했다”며 “이는 오히려 사무장 병원의 경우보다도 불법성의 정도에 있어서 더욱 중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준래 변호사는 “대상 판결은 현재 진행 중인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사실상 무력화 시키는 판결”이라며 “헌법재판소에서 의료법 제33조 제8항이 합헌이고 동 제도를 존치시켜야 한다는 판결을 선고하더라도, 대상 판결에 의하면 비용을 환수할 수 없다는 취지인바, 결국 장래 선고될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무력화 시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