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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 파브르 곤충기(1879 )- 태양을 옮기는 소똥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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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 파브르 곤충기(1879 )- 태양을 옮기는 소똥구리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4.06.27 08: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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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뉴스]

어떤 계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사람이 무슨 일을 하기 위해서는 동기 같은 것이 있어야 한다는 것.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살아가면서 이 말은 거의 진리와 같다는 느낌이다.

각오나 결심은 어느 날 갑자기 자고 일어나니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깨달음과 같이 일상의 과정 속에서 일어난다. 곤충기를 쓴 파브르는 1854년 몹시 추운 겨울 어느 날 그런 일이 생겨났다.

하필 그때 파브르는 난롯가에서 독서를 하고 있었다. 얼마나 독서에 열중해 있었던지 작가의 말에 따르면 밤이 깊었고 장작이 모두 타버렸지만 책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대체 어떤 책이었는지 궁금증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곤충학 잡지였고 그 잡지에 실린 레옹 뒤프르의 벌에 관한 논문이었다. 논문을 읽으면서 파브르는 이것이야말로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이었다고 깨달았다. 곤충기를 쓰게 된 일의 계기는 이렇게 찾아왔다.

당시 파브르는 생물학 선생이었고 그래서 어느 정도 곤충에 대한 지식이 있었다. 어려서부터 곤충을 좋아했던 경험도 그가 곤충에 매력을 느낀 이유이기도 했다. 그때까지 파브르는 곤충학이란 곤충을 잡아서 이름을 찾고 이름이 없는 것은 이름을 붙이고 표본을 만드는 것 정도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논문을 읽고 나서는 곤충이 자연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조사하는 생태 연구 분야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래서 그는 잡지에 나온 레옹 뒤프르의 사냥벌의 생태를 연구하기 위해 애타게 봄을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봄이 왔고 혹노래기벌이 마취의 명수인 것을 확인했다. 먹이인 비단벌레 애벌레의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침으로 절묘하게 마취시킨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보통 곤충은 죽은 후 12시간만 지나면 내장이 마르거나 썩어 버리는데 노래기벌이 잡아 놓은 비단벌레와 바구미는 그렇지 않았다. 혹노래기벌의 놀라운 마취 솜씨를 발견한 파브르는 이 연구를 통해 뒤르프의 논문이 틀렸다는 사실을 밝혀내 프랑스 학사원의 실험 생리학상을 받았다.

뒤르프의 격려 편지는 파브르의 연구 의욕을 더욱 고취시키는 계기가 됐다.

한편 필자도 벌에 쏘여 마취가 된 적이 있었다. 그 벌이 혹노래기벌이었는지 아닌지는 모른다. 어쨌든 너무나 많은 벌에 쏘여 얼굴이 두 배는 커졌고 그래서 만져도 부은 부위는 감각이 없었다.

그것이 마취가 아니고 무엇인가. 나는 벌에게 혹독하게 당하고도 수십 년이 지난 세월 동안 한 번도 나를 쏘았던 그 벌을 원망하지 않았다. 내가 벌을 건드렸고 화나게 했고 그래서 그 벌이 도망가는 무리들 가운데 나만 쫓아와서 집중적으로 쏜 것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계기로 나는 벌을 보면 괴롭히지 않고 특히 떼 지어 있는 벌을 보면 은근히 피해갔다. 그날 이후 나는 벌에 쏘이지 않았다. 벌에 대한 기억은 거기가 전부다. 파브르처럼 연구의 대상이 아닌 처참한 상처의 기억으로 벌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파브르는 풍뎅이도 연구했다. 수많은 풍뎅이 가운데서도 파브르의 눈길을 끈 것은 소똥구리였다. 소똥구리라면 나도 할 말이 좀 있다. 파브르처럼 연구를 하는 대신 가지고 놀았기 때문이다.

1960년 후반이나 초반 그러니까 내가 땅꼬마 시절 나는 너무나 많은 소똥구리를 보았고 만졌고 심지어 집어 던지기까지 했다. 소똥구리의 집을 부쉈고 밟았다. 나는 멀리서도 소똥구리가 있는 집을 귀신같이 찾아냈다.

▲ 소똥구리가 경단을 집으로 밀고가는 모습은 마치 태양을 옮기는 것처럼 신비롭다. 고대 이집트 벽화에서 흔하게 관찰된다.
▲ 소똥구리가 경단을 집으로 밀고가는 모습은 마치 태양을 옮기는 것처럼 신비롭다. 고대 이집트 벽화에서 흔하게 관찰된다.

사실을 말하면 '귀신같이'는 아니다. 한두 번 그런 경험이 있으면 누구나 소똥구리 집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소똥구리가 집을 지으려면 일단 똥이 있어야 한다. 그 똥은 주로 소똥이다.

양 똥이나 말똥에서도 소똥구리가 살지만 당시 내가 살던 시골집 주변은 소똥이 대세였다. 집 주변은 물론 학교길에도 똥 덩어리들은 널려 있었다. 똥 주변을 조금만 벗어난 땅에는 일반 땅과는 달리 형태가 변형된 땅이 있었고 그것은 소똥구리의 짓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았다.

'저기 소똥구리 집이 있군. 어제는 밟았으니 오늘은 발로 차 볼까. 아니면 나뭇가지를 꺾어 뒤집어 볼까. 그것도 귀찮으면 손으로 마구 파헤쳐 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한 것을 행동으로 옮겼다. 소똥구리 집에는 소똥이 먹을 경단이 있었다. 나는 경단을 만드는 그 똥을, 크고 넓은 그 똥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 똥은 지독한 냄새를 풍기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똥 무더기 속에서 나온 소똥구리를 손바닥에 놓고 놀았고 그가 만들었던 경단을 뺏기도 했다. 그보다 더 둥글게 만들 수 있다는 듯이 손으로 비벼댔고 그러자 소똥은 단단해져서 멀리 던질 수 있었다.

그렇게 던지기 연습용으로 놀이 삼던 나는 소똥구리 집을 파헤치고 경단을 훔치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대단히 비열한 짓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사람의 똥은 더럽고 냄새가 났으나 소똥은 그러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지금도 나는 소똥을 만지면서 냄새가 난다고 소똥을 만진 그 손으로 코를 움켜잡은 기억이 없다. 더럽기 때문에 물로 깨끗이 씻어야 한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냥 흙에 문지르거나 풀로 쓱쓱 닦는 정도였다.

소똥구리의 경단 만드는 작업도 심심할 때면 지켜보기도 했다. 아무렇게나 퍼질러진 똥 덩어리가 태양처럼 둥근 공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신기한 눈으로 지켜봤다. 완성된 그 공을 물구나무선 채로 집으로 끌고 가는 장면은 지금 생각해도 대단했다.

뒤로 밀고 가는 힘은 또 얼마나 셌던가. 시골길이라는 것이 아스팔트처럼 평탄할 리 없었다. 울퉁불퉁한 그 길을 넘어지고 쓰러지면서도 소똥구리는 먹이 저장소인 집으로 경단을 정확히 끌고 갔다.

가는 도중에 힘센 악당을 만나 먹이를 뺏기기도 하고 뺏기지 않으려고 서로 앞발을 들고 치열하게 싸우던 모습이 희미하게 떠오른다. 고대 이집트의 무덤 벽화에는 경단을 끌고 가는 쇠똥구리의 모습이 흔하다.

둥근 경단이 마치 태양을 닮았고 먹이를 끌고 집으로 들어갔다 나중에 나오는 것이 영원 불사와 비슷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집트의 왕 파라오는 태양신을 숭배했으므로 소똥구리는 발로 차거나 짓밟히는 존재가 아니라 추앙의 대상이었다.

그것을 그 시절에 알았더라면 나는 소똥구리에게 그런 못된 짓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점에 대해 나는 비록 오랜 시간이 지났더라도 그래서 죄를 물을 수 없다손 치더라고 소똥구리에게 미안하다.

나의 소똥구리 관찰은 이 정도다. 파브르에 비하면 얼마나 초라한가. 보석처럼 빛났던 검은 등판과 무엇을 자르기에 좋은 톱날 같은 발톱이 그리울 뿐이다.

파브르의 눈길은 이 계절에 어울리는 매미에게도 쏠렸다. 나도 매미에 흥미를 느꼈다. 주로 채로 잡는 것이었지만 불과 3~4년 전에는 신기한 것을 목격했다. 그것은 매미가 성충이 되기 직전 그러니까 땅에서 나오려는 시기에 땅을 파서 매미를 잡는 사람을 본 것이다.

그는 매미의 애벌레가 천적을 피해 밤 시간대에 나오려는 것을 감지하고는 불빛을 이용해 먼저 나온 놈들을 줍거나 땅을 파서 애벌레를 꺼내고 있었다. 그 며칠 후에는 2인 1조로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땅을 나와 나무에 붙어 탈피 하려고 준비하거나 풀잎에 붙은 성충 전의 매미를 잡아 검은 봉지에 넣는 모습을 우연히 보았다.

겨우 불개미들의 공격을 피해 여기까지 왔는데, 이거 너무 한 거 아냐 하는 심통이 들었다. 봉지가 제법 불룩했다. 자전거 일행 가운데 한 명이 말했다.

"날개 달기 전의 녀석을 구해달라는 사람의 부탁을 받았어요. 보신용으로 먹는다고요."

그는 이렇게 말하면서 봉지에서 한 마리를 꺼내 손바닥 위에 놓았다.  한 눈에 봐도 너무 연약했다.

"제발 이러지 마세요. 녀석들이 여기까지 오는데 몇 년이 걸린지 알아요?"

내가 이렇게 말하고 고개를 들었을 때 그들은 자전거를 타고 또 다른 장소로 이동하고 없었다.

매미 소리를 들을 때면 나는 검은 봉지를 든 두툼한 그 손을 기억한다. 그들이 몇 년이 걸렸는지 아느냐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면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못할 터.

파브르에 따르면 매미는 이솝우화에 나오는 게으름뱅이가 아니다. 길어야 지상에서 3~4주 사는 매미는 그럴 시간이 없다. 베짱이보다 훨씬 부지런한데 억울한 누명을 쓰고 있다고 항변했다. 더구나 매미는 찌는 더위에 목마른 다른 곤충을 위해 나무에 구멍을 뚫어 수액을 먹도록 도와주는 고마운 이웃이라는 것.

파브르는 이밖에도 봄의 전령이라고 부를 수 있는 배추흰나비, 곤충의 왕 사마귀, 시체 처리 전문가 송장벌레, 부지런한 정원사 딱정벌레 등 숱한 곤충들의 생태를 관찰하고 기록했다. 1879년부터 1907년까지 무려 30년간 10권의 곤충기를 남겼다.

어린 시절 꿈과 희망을 줬던 <파브르 곤충기>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서 자라나는 어린이들의 모험심을 키워주고 있다.

: <파브르 곤충기> 가운데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소똥구리다. 아마 가장 관심 있고 추억이 많은 곤충이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소똥구리는 한국 땅에서 볼 수 없다. 1966년 이후 본 사람이 없다. 사라졌기 때문이다.

환경부는 멸종 위기 야생생물 2급으로 지정하고 있다. 몽골에서 가져와 복원 작업을 한다고 한다. 하지만 소들이 먹는 사료는 곡물이나 동물성 위주로 바뀌었으며 항생제나 살충제로 오염돼 있다.

내가 가지고 놀았던 당시 상황과는 많이 다르다. 짚과 쌀겨만으로 만든 여물을 먹고 자라는 소들은 이제 없다. 사라져 가는 것들을 보면서 지난날을 아쉬워하는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파브르가 오늘날 한국 땅에서 태어났다면 12시간 이상 먹으면서 계속 똥을 싸는 소똥구리를 관찰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수천 년 전 벽화나 그림에서 태양을 서쪽에서 동쪽으로 굴리는 소똥구리의 그림은 그래서 아련함으로 다가온다.

미이라의 부활 같은 믿음도 사라지고 삭막한 세상에서 살아야 하는 인류가 불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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