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뉴스]
제목부터가 수상하다. 관객을 모독하다니. 왕으로 받들어도 시원찮을 판국에. 과연 작품은 관객을 모독하고 있다.
페터 한트케의 희곡 '관객모독'은 기존의 희곡과는 전혀 다른 작품이다. 다른 연극처럼 배우, 희곡, 무대가 있는 것은 맞지만 배우의 이름이 없다. 특정한 역할도 주어지지 않는다. 막의 구분도 없다.
이런 허술한 희곡도 있나 싶지만 사실은 작가의 의도적이 배치다. 일부러 배역을 따로 설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무대도 있고 배우도 있고 관객도 있으니 희곡이 아니라고는 할 수 없다.
첫 페이지에는 작품을 위해 헌신한 사람들의 이름이 나와 있다. 10명의 이름중에 맨 뒤에 언급한 존 레논이 눈길을 끈다. 맞다. 우리가 아는 비틀즈 멤버 존 레논이다.
하지만 존 레논이 어떤 역할을 했다는 말은 없다. 다만 둘은 1940년과 1942년 출생이라 동년배의 시대를 살고 있었다. 가수가 나왔으니 롤링 스톤즈도 언급해야 겠다.
그가 부른 '텔미'라는 노래를 귀기울여 들으라고 충고하고 있다. 이것은 충고라기보다는 극의 서두에 있는 '배우를 규칙'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배우를 위한 규칙들은 복수에서 보여 주듯이 한 페이지 분량에 해당할 만큼 길고 복잡하다.
예를 들면 가톨릭 성당에서 신부와 신자들이 번갈아 올리는 기도를 귀 기울여 들을 것, 데모하는 군중들의 구호 소리를 귀 기울여 들을 것, 안장이 땅을 향해 거꾸로 세워진 자전거에서 돌아가는 바퀴살이 조용해 질 때까지 그 소리를 귀 기울여 듣고, 멈추어 설 때까지 바퀴살을 자세히 관찰 할 것, 최초의 비틀즈 영화에서 링고 스타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조롱당한 후 드럼 앞에 앉아 드럼을 두들기기 시작하는 그 순간의 미소를 자세히 관찰 할 것, 서부에서 온 사나이라는 영화에서 게리 쿠퍼의 얼굴을 자세히 관찰 할 것 등이다.
그리고 서막이 이어진다. 아직 배우들에게 관객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상태에서 배우들은 두서 없이 마구 욕설을 지껄인다.
혐오스러운 상판대기들아, 어릿광대들아, 눈딱부리들아, 가련한 몰골들아, 뻔뻔스러운 작자들아,오락실 사격장의 허수아비들아, 멍청하게 서서 구경하는 꼴통들아.
이때 목소리를 제외하고는 다른 이미지들은 나타나지 않는다. 욕설은 또 다른 누구를 겨냥하고 있지 않다. 그리고 말들이 이어진다.
배우들은 같은 분량으로 열심히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여러분을 환영한다. 이 작품은 일종의 머리말이다. 여러분이 아직 들어본 적이 없는 것은 여기서도 듣지 못한다. 여러분이 아직 본 적이 없는 것은 여기서도 볼 수 없다. 여러분이 이전에는 눈으로 보았던 것을 귀로 듣게 될 것이다.
그러면서 관객이 기대했던 것들에 대한 장광설이 이어진다. 연극은 앞서 말했듯이 막이 없다. 그래서 말은 끊어지지 않고 계속 이어진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르러 욕들이 향연이 이어진다.
배우가 관객에게 욕을 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욕을 하게 되면 그냥 흘려 듣지 못하고 주의 깊게 경청하게 되리라는 것. 그러면 배우와 관객들의 사이는 더 이상 멀어지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더구나 관객들은 욕설을 듣게 되면 경직자세로 몸이 굳어지는데 이는 욕을 통해 청각적 이미지를 만든다는 것. 더구나 욕설에 대한 주의도 받았으니 관객들은 욕설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거라고 판단한다.
그러면서 욕설은 관객인 너로 향한다.
너희들, 눈딱부리들아.
이건 욕설의 시작에 불과하다. 괜찮은 욕설 들 중 몇가지를 추려본다.
교활하고 왜소한 게르만 종자들아, 뻔뻔스러운 작자들아. 헐뜯기 대가들아, 쓸모 없는 건달들아, 줏대 없는 꼭두각시들아, 사회의 찌꺼기들아. 떠돌이 사기꾼들아, 불결한 유대 종자들아, 전쟁광들아, 공산당 떼거리들아, 인간의 모습을 한 짐승들아, 나치의 돼지들아. 정치적인 미성년자들아, 돈에 팔려 박수나 치는 작자들아, 아, 죽을 이유가 충분한 자들아, 종말이나 와야 성인이 될 자들아.
그리고 친애하는 청중 여러분, 동포들이여. 여러분은 여기서 환영 받으셨습니다라고 막이 내린다.
팁: 페터 한트케는 소설 '말벌들'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이를 기회로 작가고 평생 먹고 살고 싶어 했다. 하지만 현실은 작가로 살아가는 것이 녹록치 않았다.
그래서 비교적 돈벌이가 쉬운 희곡 작업에 매달렸고 '관객모독'은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이 희곡은 처음엔 출판도 공연도 불가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우려곡절 끝에 프랑크푸르트에서 1965년 초연되자 관객의 반응은 뜨거웠다.
자고 일어나니 유명인이 된 것이다. 이때부터 작품과 작가가 한 몸이 됐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작품이 그를 일약 스타로 키운 것이다.
배우의 직업이나 나이. 심지어 성별이나 역할도 없는 듣도 보도 못한 희곡 하나의 힘은 컸다.
화려한 조명이나 무대장식, 배우들의 놀라운 의상 없이도 오로지 언어로만 이루어진 언어극이 가진 반복되는 짧은 문장.
그리고 욕설을 배가 터지도록 얻어 먹고도 여기서 여러분은 환영 받았다는 말로 마무리되는 연극에서 관객들은 과연 고맙고 감사하다는 인사말로 화답하고 있으니 아이러니가 따로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