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뉴스]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사계절이 다 산행의 적기다. 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겨울은 특히 그렇다. 시마무라에게 겨울은 산을 타고 내려와 온천 마을에서 묵는 것이 하나의 일과처럼 되어 있다.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다.
국적여부를 떠나 이런 사람을 부러워 하지 않을 산꾼은 없을 것이다. 실컫 등산하고 나서 내려오니 온천마을이고 그곳에서 게이샤와 여독을 푼다면 이는 영화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영화가 아닌 소설 속에서 이런 장면을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다.
아름답다고 했지만 실제보다는 작품 해설이 더 그렇듯 해 독서에 실망한 독자는 해설로 만족을 얻어도 되겠다. 한편 주인공 시마무라는 별로 하는 일이 없다. 간혹 고전 무용에 대한 비평을 쓰는 것으로 나와 있으나 이마저도 곁다리다. 아마도 부모에게 물려 받은 큰 돈으로 무위도식하는 식자층으로 추측된다.
그저 산행을 하고 마을로 호랑이처럼 어슬렁 거리면서 내려와서는 온천을 즐기고 게이샤와 농담 따먹기 하는 것이 인생의 낙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는 다른 건달과는 달리 고상한 면이 있다. 냉소적이지만 함부로 상대를 대하지 않고 여자가 사랑의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말과 행동을 한다.
고마코는 그런 시마무라에게 끌린다. 여기저기 여관을 전전하면서 다른 손님을 접대하다가도 문득 시마무라가 묵는 료칸으로 찿아든다. 술이 취한 상태에서도 그렇고 멀쩡한 정신에서도 그렇다.
여자는 아무리 생각해도 시마무라를 사랑하는 듯하다. 그가 손을 뻗으면 모든 것을 줄 준비가 되어 있는 상태다. 하지만 시마무라는 어쩐 일인지 그런 일에 크게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육체적이거나 영적이 것에 게의치 않는 듯한 태도다. 묘한 남자다.
정체가 궁금한 이 남자에게는 또다른 관심을 끄는 여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요코가 되겠다.
요코는 고마코의 친구라면 친구이고 연적이라면 연적이다. 선생님 댁의 아들과 연인관계였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처럼 보이기도 한다. 한때 간호사를 꿈꿨으나 실패했다.
시마무라는 갈등이랄 것 까지는 없지만 어쨌든 두 여자 사이에서 누구를 선택할지 결정할 필요가 없다. 그에게 사랑은 고마코나 요코처럼 별로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마무라는 눈이 많이 내리는 국경의 마을을 떠나기로 한다.
이렇게 마음을 굳히고 있을 때 마을에서 화재가 발생한다. 화재는 크고 길게 뻗어 좀처럼 진화가 되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화재 현장에는 요코가 있고 그녀는 이층에서 떨어져 내린다. 고마코가 그녀를 안고 나온다.
요코는 죽었을 것이다. 아니 죽지는 않고 살았으되 더이상 게이샤는 하지 못할 정도로 몸이 망가졌을 것이다. 작가는 요코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밝히지 않고 있다. 한겨울의 화재는 여러모로 무섭다.
하지만 불과는 상관없는 실내는 온기로 가득하다. 그 실내의 난로 위에 찻주전자가 있고 물이 끊고 있다. 하지만 시마무나는 두 여자를 떠나 다시는 이곳에 오지 않을 작정이다. 이것이 소설의 대략적 줄거리다.
눈이 많이 내리는 온천 산간 마을에서 벌어진 이런 일들이 소설의 소재가 됐다. 분량은 아주 짧다. 한 권으로 나왔으나 읽다 보면 중편 정도도 안 되는 분량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금세 끝난다.
정성들여 읽어도 명성에 비해 별 감흥이 없다. 오리려 뒷장에 붙은 해설을 읽었을 때 비로소 이 정도 였나 느낄 정도다. 그도 그럴것이 이 소설은 한 번에 완결된 것이 아니다. 1937년 처음 나와 1948년 완간됐다.
이어지지 않고 갑자기 원고가 사라진 것 같은 이상한 연결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한다. 1968년 작가는 이 소설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고독한 인간의 깊은 내면을 아프게 파고들었다는 평가다. 영화로도 제작됐다. 독자들 가운데는 이 소설의 앞 문장이 대단히 유명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 많겠다.
여기저기서 많이 소개됐기 때문이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 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애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섰다.”
짧고 간결한 것에 점수를 많이 받았다. 여기서 국경은 국가간의 경계가 아니라 군마현과 니카타현의 지역 경계를 뜻한다.
팁:어마어마한 눈이 내렸다. 온통 세상이 눈으로 덮였다. 사람 키보다도 더 많은 눈 때문에 저녁도 대낮처럼 온통 흰 세상이다. 세상은 고요하다.
오직 내리는 눈 소리만 들릴 뿐이다. 눈이 그친 하늘은 그야말로 별들의 잔치다. 은하수는 곧 쏟아져 내려 땅에 닿을 듯하다.
세상이 이럴 때 온기가 도는 실내에서 한 남자가 끊는 찻주전자를 바라보고 있다. 우수에 젖은 듯하나 얼굴에는 냉철한 결정을 곧 내릴듯한 고독함이 가득담겨 있다.
그때 여자의 발자국 소리가 사그락 사그락 들여온다. 게다를 끌고 오는 소리에 백미터 전력질주를 막 마친 심장 박동처럼 출렁인다. 술이 얼큰하게 취한 게이샤가 코 맹맹이 소리로 다가와 사내에게 안긴다.
이 사내는 이 여자를 사랑할까. 사랑을 기다리며 무너질 듯 안긴 그녀에게 남자는 사랑으로 화답할까. 두 여자와 한 남자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는 어떤 결론도 내리지 못하고 쓸쓸하게 막을 내린다.
무시무시하게 많은 설국의 현장 검증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눈은 그런 것이다. 차가워 너무나도 차가워 이 사랑이 파고들 틈을 주지 않는다. 남자는 떠나고 남은 한 여자는 여전히 손님을 따라 여관을 전전할 것이고 또 다른 여자는 더는 남자를 사랑하지 못한 채 밤에 피는 하얀 장미로 남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