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협 “사기업 이익 위해 공공 건보 재정 누수 유발”
[의약뉴스] 정부가 교통사고 경상환자의 치료 기간을 사고일로부터 8주로 제한하고 향후치료비(합의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하는 법령 개정을 추진하자 사고 피해자 중심의 환자단체가 거리로 나왔다.
자동차보험환자치료권익연대(대표 정희원)는 2일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자동차보험 8주 치료 제한 및 향후치료비 폐지 강행 규탄’ 집회를 개최, 오는 4일로 예정된 국무회의 상정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이날 집회에는 연대 소속 회원 50여명이 참석했다.
국토교통부와 금융감독원은 상해등급 12~14급 경상환자의 8주 초과 치료에 별도 심사 절차를 도입하는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 시행령ㆍ시행규칙 개정안’과 경상환자 향후치료비를 폐지하는 ‘보험업감독업무시행세칙 개정안’을 추진 중이다. 이 시행령 개정안은 지난달 30일 차관회의를 통과해 국무회의 심의를 앞두고 있다.
연대는 정부가 내세운 ‘8주 치료 제한’에 의학적 타당성이 결여됐다고 지적했다.
그 근거로 경추 염좌(편타성 손상) 환자의 40~50%가 1년이 지난 시점에도 통증이나 기능장애를 호소하며 32%는 6개월 뒤에도 증상을 남긴다고 보고한 국제 학술 연구자료를 제시했다.
미국 의사협회(AMA) 지침 역시 영구장해 평가(MMI) 기준을 2년으로 설정한다는 설명이다.
뿐만 아니라 현행 상해등급 분류 체계의 한계로 인해 중상 환자까지 경상으로 대거 분류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2022년 전체 교통사고 피해자 175만 3000명 중 94.4%인 165만 5000명이 경상(12~14급) 판정을 받았는데, 건강보험은 척추 환자의 염좌와 추간판 탈출증(디스크) 비율을 5대 5 수준으로 집계하는 반면, 자동차보험은 디스크 환자의 상해등급 9급(중상) 적용 비율을 1% 미만으로 기록했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더해 현행 상해등급 기준 항목(248개)이 의료 현장의 상병 항목(370여 개)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 전체 상병의 약 23%를 등급표에서 누락, 수술을 받지 않은 디스크나 힘줄ㆍ연골 파열 환자조차 진단 주체가 아닌 보험사의 일률적 판정에 따라 경상(12~14급)으로 판정된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정부가 내세운 ‘병원 과잉청구’와 ‘보험료 인하 효과’도 객관적 수치와 거리가 멀다는 것이 연대의 입장이다.
금융감독원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자동차보험 사기 적발 인원 중 ‘병원의 치료비 과장청구’는 2022년 1029명(1.8%)에서 2023년 940명(1.4%), 2024년 627명(1.0%)으로 감소하고 있으며, 연간 교통사고 환자 약 170만 명 가운데 0.04%에 불과하다는 것.
또한 정부는 이번 개정으로 향후치료비 약 1조 5000억 원과 8주 초과 치료비 약 3800억 원 등 총 1조 9000억 원의 비용을 절감한다고 추산했으나, 실제 소비자 보험료 인하에 반영하는 금액은 전체의 9% 수준인 1800억 원에 불과하고 나머지 91%에 달하는 절감액의 귀속처는 밝히지 않았다고 일갈했다.
시민연대 정희원 대표는 개정안 시행 시 피해자 부담과 건보 재정 악화 가능성을 경고했다.
정 대표는 “과실 피해자는 자기보험 할증을 감수하며 치료받는데 이제는 합의금마저 잃게 돼 치료 부담이 건보 재정과 개인에게 전가돼 건보료 인상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절감 추정액 약 1조 9000억 원 가운데 보험료 인하에 반영하는 금액은 9%인 1800억 원에 불과하며 나머지 91%의 행방을 정부는 설명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정부가 4억 6000만 원의 예산을 들여 상해등급 개선 연구용역을 진행 중임에도 결과 발표 전 법 개정을 강행하고 있다고 힐난했다.
정 대표는 “과잉 진료나 일탈은 엄정히 처벌해야 하지만 0.04% 수준의 일탈을 이유로 94.4% 환자의 치료받을 권리를 제한하는 조치는 명백한 과잉”이라고 역설했다.
한편, 대한한의사협회(회장 윤성찬)도 해당 시행령 개정안이 민간 손해보험사의 손해율을 낮추는 대신 국민건강보험 재정에 부담을 전가한다며 폐기를 촉구했다.
한의협은 “국토교통부가 추진하는 개정안은 자동차보험사가 부담해야 할 교통사고 치료비를 국민건강보험으로 떠넘기는 조치”라며 “보험사의 손실을 줄이려고 공적 기금인 국민건강보험 재정 손실을 유발하는 시행령 개정은 즉각 철회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의협에 따르면, 자동차사고 관련 구상금 환수율은 2019년 74.0%에서 2022년 51.81%로 매년 감소세하고 있다. 건강보험이 선지출한 금액 중 보험사로부터 회수하지 못한 금액이 늘고 있다는 의미다.
나아가 한의협은 “개정안대로라면 가장 큰 이익을 얻는 주체는 보험금 지급이 줄어드는 손해보험사이며 국민 보험료 부담과 피해자 치료비 부담만 늘어난다”면서 “정부는 시행령 개정을 즉각 중단하고 보건복지부, 국토교통부,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참여하는 범정부 협의체를 구성해 재정 전가 규모를 전면 재검증하라”고 요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