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뉴스]
‘장자’를 읽었다고해서 장자를 안다고 할 수 없다. 장자의 사상을 이해했다고 하기도 어렵다. 철학의 세계 아니 깊은 성현의 세계 더 나아가 도가 튼 도가의 세계에 들어가는 것은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부처님의 말씀을 글이나 말로 이해하기 어려운 것처럼. 마음과 마음으로 실천하고 체험하고 깊이 깨달아야 하는 것은 부처님 말씀이나 ‘장자’나 매한가지다. 이렇게 시작하고 나면 그럼 왜 읽었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첫걸음부터 배부를 수는 없다. 이제 첫발을 뗐다고나 할까. 그러니 너무 성급하게 다그칠 필요없다. 차쯤 알게 되거나 영원히 알 수 없는 상태에 빠지더라도 일단 시작한 것이 중요하므로.
다 장자를 연구하는 학자가 될 수는 없는 일. 그럴 이유도 필요도 없다. 다만 몇 가지 사실만은 어렴풋이 아니 확실히 기억이 나는 것이다. 물질만능주의 현대 사회에서 장자는 그것에만 너무 매몰되지 말라고 훈계하고 있다는 것이다.
옳고 그름의 이분법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라는 것이다. 아닌가. 아니라도 할 수 없다. ‘장자’ 해석은 여러 가지가 있으니 아니라고 주장한다면 지금부터라도 연구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잡설은 집어치우고 본론부터 들어가 보자. 내편 1편은 소요유(자유롭게 노닐다)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절대 자유의 세계( 현암사, 오강남 번역)에 대해 말하고 있다. 1편이 제일 중요한 부분이니 그대로 옮겨 보자.
“ 북쪽 깊은 바다에 물고기가 살았는데 그 이름을 곤이라 하였다. 그 크기가 몇천 리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 물고기가 새가 되었는데 붕이라고 했다. 그 등 길이가 몇천 리인지 알 수 없었다. 한 번 기운을 모아 힘차게 날아오르면 날개는 하늘에 드리운 구름 같았다. 이 새는 바다 기운이 움직여 물결이 흉흉해지면 남쪽 깊은 바다로 가는데 그 바다를 예로부터 깊은 못 천지라고 했다.”
처음부터 대단하지 아니 한가. 곤이 붕이 되고 (그렇다면 곤과 붕은 하나인가.) 자유롭게 하늘을 날고 깊은 바다에 풍덩 빠진다. 이것이 소요유 절대 자유, 인간이 지닌 무한한 변화 가능성이다.
도입부는 이렇게 시작된다.
덧붙여 곤과 붕의 세계를 알지 못하는 매미와 새끼 비둘기, 메추라기 등을 등장시켜 인간 세계의 근본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요임금이 허유에게 부족한 자신이 아직도 임금 자리에 있다고 자책하면서 나라를 맡아 달라고 하는 부분 역시 인간이란 무엇인가, 진정한 자유는 무엇인가 하는 의문을 품게 한다.
세상 사람들이 하늘처럼 떠받드는 최고의 성군인 요임금조차 허유보다 못하다는 말인가. ( 허유는 임금 제의를 받고 자신의 귀를 씻었다는 후대의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1편은 송나라 모자 장수와 요 임금, 큰 박과 손 트는 데 쓰는 약, 쓸모 없는 나무로 끝을 맺고 중국 철학사의 최고봉으로 일컬어지는 2편 제물론(사물을 고르게 하다.)으로 넘어간다.
여기에는 송나라 왕안석이 말한 책을 덮고 앉아 있어도 여러 가지 소리가 귀에 욍욍 들려 오는 듯하다고 말한 중국 문학사 중에서 최고의 명문이 등장한다. 그런지 아닌지 한번 읽어 보자. 자유가 물었다.
“어떻게 하면 그 소리( 땅의 소리) 를 들을 수 있나.”
자기가 대답했다.
“땅덩어리가 뿜어내는 소리를 바람이라고 하지. 그것이 불지 않으면 별일 없이 고요하지만 한 번 불면 수많은 구멍에서 온갖 소리가 나지. 너도 그 윙윙 하는 소리를 들어 보았을 것이다. 산의 숲이 심하게 움직이면 큰 아름드리 나무의 구멍들, 더러는 코처럼 더러는 입처럼 더러는 귀처럼 더러는 목이 긴 병처럼 더러는 술잔처럼 더러는 절구처럼 더러는 깊은 웅덩이처럼 더러는 좁은 웅덩이처럼 제각기 생긴 대로 물이 괄괄 흐르는 소리 화상이 씽씽하는 소리, 나직이 꾸짖는 소리, 숨을 가늘게 들이키는 소리, 크게 부르짖는 소리, 울부짖는 소리, 깊은 데서 나오는 소리, 새가 재잘거리는 소리 등 온갖 소리를 내지. 앞에서 가볍게 우우하는 소리를 내년 뒤따라서 무섭게 우후하는 소리를 내고 산들바람이 가볍게 불면 가볍게 화답하고 거센 바람이 불면 크게 화답하디. 그러니까 바람이 멎으면 그 모든 구멍은 다시 고요해 진다. 너도 저 나무들이 휘청휘청 구부러지거나 살랑살랑 흔들리기도 하는 것을 보았겠지.”
이어 참주인, 조삼모사, 나비의 꿈( 장주가 나비가 된 꿈을 꾸었는데 자신이 장주임을 알지 못하고 꿈에서 깨어나니 다시 장주가 되었다는)으로 끝난다.
이런 식의 끝없는 질문거리와 생각거리가 이어진다. 마지막 부분에 해당하는 6편과 7편은 대종사( 큰 스승)가 등장해 진정으로 위대하고 큰 스승은 누구인지를 다루고 있다. 여기에 진인(참사람)이 등장한다.
장자가 말하는 진인은 이렇다.
“삶을 즐겁다 할 줄 모르고 죽음을 싫다 할 줄도 몰랐다. 태어남을 기뻐하지도 죽음을 거역하지도 않았다.의연히 갔다가 의연히 돌아올 뿐. 그 시원을 잊지 않고 그 끝을 알려고 하지 않았다. 삶을 그대로 받아들여 살다가 잊어버린 채로 돌아갔다. 마음의 도를 해치는 일도 없고 사람의 일과 하늘이 하는 일에 간섭하지 않았다.”
이런 사람이 진인이라는 것.
그러니 그 모습 우뚝하나 무너지는 일 없고 뭔가 모자라는 듯하나 받는 일 없고 한가로이 홀로 서 있으나 고집스럽지 않고 넓게 비어 있으나 겉치레가 없다. 엷은 웃음 기쁜 듯하고 하는 것은 부득이한 일뿐 빛나느니 그 얼굴빛 한가로이 덕에 머물고 넓은 듯 큰 듯하고 초연하였으니 얽매임이 없고 깊으니 입 다물기 좋아하는 것 같고 멍하니 할 말을 잊을 듯했다...그러므로 좋아하는 것도 하나 좋아하지 않는 것도 하나. 하나인 것도 하나, 하나 아닌 것도 하나라는 것.
이런 경지라면 하늘의 것과 사람의 것이 서로 이기려 하지 않는 경지 즉 진인의 경지에 오른 것이다. 이렇게 해서 대충 수박 겉핧기 식으로 황제와 임금의 자격(응제왕)까지 7편을 살폈다.
이후 외편과 잡편이 이어진다. 잡편의 마지막은 장자의 죽음이다. 장자가 죽게 됐을 때 장자의 제자들이 장자의 장례를 후하게 치르고 싶다는 뜻을 비쳤다.
이에 장자는 단칼에 거절하면서 하늘과 땅이 안팎으로 널(관)이고 해와 달이 한 쌍 옥이고 별과 별자리 등 온갖 것들이 장례용품이라면서 거절했다. 제자들이 시체를 그대로 두면 까마귀나 솔개가 스승의 시체를 먹을 것을 두려워하자 땅에 묻으면 땅강아지와 개미의 밥인데 어찌 한 쪽 것을 빼앗아 다른 쪽에게 주느냐고 반문했다.
과연 아내가 죽었을 때 곡하는 대신 두 다리를 뻗고 앉아 쟁반을 두드리며 노래를 불렀다는 장자다운 발상이 아닐 수 없다.
팁: 장자는 맹자와 거의 같은 시기( 양 혜왕이나 제의 선왕 때의 사람으로 기원전 390년에서 395년 사이에 태어나 기원전 300년에서 270년 사이에 죽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두 사람은 서로의 책에서 서로 언급된 적이 없어 생전에 교류가 없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장자’는 장자가 죽은 뒤 200년 뒤에 쓴 사마천의 ‘사기’에 ‘장자’라는 책이 있다고 언급한 것이 처음이다.
이후 북송 때 사람 곽상이 떠돌던 여러 사본을 6만 5000자 33편으로 줄여서 편집하고 주를 달았는데 지금 우리가 읽는 ‘장자’의 기본이 되겠다.
그는 장자를 33편으로 묶고 내편 7편 외편 15편 잡편 11편으로 나뉘었는데 내편 7편은 온전한 장자의 저술로 알려졌다. 우화에 관한 메시지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사랑을 받는 은유의 정석으로 많은 해석을 낳고 있다. 붕과 참새, 호접지몽, 포정해우, 혼돈개규 등 등.
흔히 노장사장으로 묶어 장자와 노자를 하나의 사상으로 취급하는 저술도 많이 있다. 그만큼 노자와 장자의 사상체계가 엇비슷하기 때문일 것이다.
‘장자’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읽히면서 많은 이들이 경배하는 책이다. 죽은 책이 아니라 여전히 살아서 움직이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쓸모없는 무용지용의 쓸모가 여러모로 있는 책이 바로 ‘장자’가 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