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뉴스] 대한약사회(회장 권영희)가 비대면진료를 악용해 단기간에 수백 일분의 전문의약품을 반복 처방받고 배송까지 진행한 정황을 확보, 정부의 비대면진료 제도화 및 의약품 재택 수령(약 배송) 대상 확대 움직임에 제동을 걸었다.
지난 8월 초, 불과 7일 동안 비대면진료를 통해 여러 의료기관을 돌며 우울증 치료제인 스타브론정(성분명 티아넵틴나트륨)을 최대 600일분(총 1800알)까지 처방받아 조제ㆍ배송받은 오남용 의심 사례를 회원 제보를 통해 확보했다는 설명이다.
약사회는 현행 비대면진료 체계의 다기관 처방 중복 방지망이 작동하지 않는 상태에서 약 배송까지 확대할 경우 통제 불능의 의약품 쇼핑이 벌어질 수 있다며, 비대면 처방 일수를 제한하는 등 하위법령에 실효성 있는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7일간 다기관 돌며 스타브론 1800알 반복 처방, 퀵 배송까지 확인
약사회 김인학 정책이사는 14일 출입기자단 정례브리핑에서 비대면진료를 통한 의약품 오남용 및 조제의약품 전달 의심 사례를 공개했다.
제보에 따르면 특정 환자는 지난 8월 초부터 약 7일에 걸쳐 여러 의료기관에서 비대면진료를 이용해 스타브론정을 반복적으로 처방받았다.
처방일수는 30일, 60일, 90일 등 장기처방이 이어졌으며, 한 의료기관에서는 600일 치에 달하는 처방전을 발행했다.
김 이사는 “통상 스타브론정은 1회 1알씩 하루 3회 복용하는 약제인데, 한 처방전에서는 1회 10알씩 하루 3회, 총 60일분으로 기재돼 단 한 장의 처방전으로 1800알이 처방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스타브론정은 주요 우울증 치료 및 과민성 장 증후군 등에 처방되는 전문의약품으로, 마약류나 향정신성의약품으로 지정돼 있지는 않으나, 오피오이드(아편유사제) 수용체에 부분적으로 작용해 과량 복용 시 의존성과 중독성을 유발할 수 있다.
해외 일부 국가에서는 남용 문제가 불거져 '가스스테이션 헤로인'이라는 은어로 불리며, 미 FDA 미승인 및 과다 복용으로 인한 사망 사례도 보고됐다는 전언이다.
김 이사는 “해당 환자가 7일 동안 여러 의료기관을 돌며 수백 일분을 중복 수령해야 할 임상적 이유를 찾기 어렵다”며 “특정 약국은 단기간 다수 처방전이 집중된 정황을 인지할 수 있었음에도 처방 중재 없이 조제를 진행했고, 환자에게 퀵서비스 방식으로 전달한 것으로 파악했다”고 전했다.
약사회는 이 사안에 대해 사실관계를 추가 확인한 뒤 윤리위원회 회부, 보건복지부 고발 및 법적 조치 여부를 검토할 방침이다.
◆"비대면 환경이 의료쇼핑 문턱 낮춰, 플랫폼 상업화 부작용 우려"
김 이사는 이번 사안이 대면 진료와 달리 물리적ㆍ공간적 제약이 없는 비대면진료 플랫폼의 결함을 드러낸 결과라고 짚었다.
구체적으로 “대면 환경이었다면 의료기관과 단골 약국 단계에서 과다 처방에 대한 중재와 필터링이 작동했겠지만, 비대면 환경에서는 원하는 약을 처방해 줄 때까지 여러 의료기관을 손쉽게 탐색할 수 있어 의료쇼핑의 문턱이 낮아진다”고 지적했다.
특히 플랫폼 내 유인 구조가 처방 왜곡을 부추긴다는 지적이다. 플랫폼 상에서 환자의 요구대로 처방해 주는 의료진이 상위 노출과 높은 별점을 얻는 구조가 고착되면서, 의료인의 전문적 판단권이 침해되고 진료 질서가 흔들린다는 것.
실례로 비대면 플랫폼 상에서 급여 인공눈물에 대한 다량 처방을 유도하는 마케팅이나 커뮤니티 내 ‘처방 성지’를 공유하는 사례를 언급하며 건강보험 재정 누수와 직결되는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김 이사는 “정부는 비대면진료에서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단정할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어떤 약물이 얼마나 처방되고 오남용되는지 객관적 데이터부터 검증해야 한다”며 “근거 자료조차 부재한 상태에서 의약품 재택 수령(약국 외 인도)을 전면 허용하겠다는 것은 사후 수습이 불가능한 위해를 방치하는 격”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초진 처방 7일 제한ㆍ재진 상한 설정, 선량한 의사 지키는 방어권"
이에 약사회는 비대면진료 하위법령에 초진 처방일수를 최대 7일로 명시하고, 7일을 초과하는 지속적 치료는 대면진료로 전환하도록 규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김 이사는 “초진 일수를 7일로 제한하자는 요구는 급성기 치료를 방해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첫 비대면 접촉만으로 30일, 90일, 180일씩 장기처방이 나가는 것을 막고 1주일 이내에 환자 상태를 재평가할 최소한의 안전장치”라고 강조했다.
이어 “재진이라는 이유로 한 번에 600일 치에 달하는 장기처방을 허용한다면 환자 상태 관리가 불가능해진다”며 “처방일수 제한은 의사의 진료권을 침해하는 규제가 아니라, 플랫폼의 압박과 일부 비양심적 처방 행태로부터 선량한 의료인을 보호하는 장치”라고 역설했다.
한편, 약사회는 비대면 조제 쏠림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와 관련해 대형 창고형 약국의 독점을 방지하고자 약사 1인당이 아닌 약국당 1일 25건 수준의 비대면 조제 건수 제한 의견을 정부에 전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