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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가고 싶다는 말을 들어줄 형편이 못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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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가고 싶다는 말을 들어줄 형편이 못됐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6.10.24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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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뉴스]

이. ‘주님을 섬기듯 섬기는 요양원’은 영등포 대림동에 있었다. 지하철역과 좀 떨어져 차로 이동했다. 네비게이션 주소는 정확히 요양원 지하 주차장으로 승길을 안내했다.

동승자는 광산 김씨 김여사였다. 여사는 승길의 어머니로 구십 삼세인데 아직 걸을 수 있을 정도로 정정했다. 세상을 달관한 나이답게 긴말보다는 표정으로 이야기를 대신하는 특징이 있다.

마리아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승길에게 한 십 분쯤 늦는다고 연락했다. 차가 밀린다고 했다. 전화를 끊기 전에 저쪽에서 너무 덥다는 말이 나왔는데 남자 목소리였다.

동승자가 있고 남자구나, 그렇다면 삼혼한 남편이겠지. 승길은 생각했다. 13층까지 올라가는 동안 에어컨이 고장 났는지 찜통이 따로 없었다. 유난히 더운 여름이었고 정말 숨이 턱에까지 차올랐다. 거기다 냄새도 지독했다. 뭐라고 표현하기 어려운 역겨운 냄새였다.

아파트 거실처럼 텔레비전과 쇼파가 있는 요양원 대기실은 생각보다 무척 좁았다. 좁을 뿐만 아니라 낡아서 손님을 대접하는 공간이라고는 실망스러웠다. 더군다나  사방이 꽉 막혀 있었다.

창문은 있었지만 열 수 있는 상태는 아니었다. 못으로 박아 놓았는지 승길이 열려고 해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승길은 낡은 쇼파 옆에 있는 선풍기를 작동시켰다. 이른 시간이라 다른 면회객은 없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 백세 노인이 더 살려고 발버둥 친다면 남은 가족들은 어떤 심정일까. 오랜 간병에 지쳐서 이제 그만, 하고 나가 떨어질까. 아니면 더 열심히 봉양할까. (사진은 쳇 지피티 이미지.)
▲ 백세 노인이 더 살려고 발버둥 친다면 남은 가족들은 어떤 심정일까. 오랜 간병에 지쳐서 이제 그만, 하고 나가 떨어질까. 아니면 더 열심히 봉양할까. (사진은 쳇 지피티 이미지.)


무슨 냄새지? 선풍기 바람이 불자 모여 있던 냄새들이 사방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이른 점심을 준비하는지 음식냄새까지 나서 승길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차라니 냄새가 한 곳에 있으면 좀 나을까 싶어 선풍기를 끄려고 했다.

하지만 손 부채질을 하면 김여사를 보고는 생각을 달리 먹었다. 회전보다는 바람이 김여사 쪽으로 선풍기 날개를 고정을 시켜 놓았다. 돌아가시기 전에 한 번은 와 봐야 할 곳이었지만 승길은 영 기분이 좋지 않았다. 여사도 코를 끙끙거렸다.

“썩는 냄새가 난다.”

혼잣말처럼 했으나 승길은 분명히 들었다. 썪다니. 무엇이 썪어 가나. 승길은 썩는 냄새의 정체를 알고 싶지 않았다. 정확한 위치를 안다면 직원에게 저기서 무슨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언질을 줄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면회객 밖의 일이었다.  대신 승길은 손을 말아 코를 감쌌다. 냄새의 기억은 오래 가기 때문에 냄새로 병문안을 기억하려는 듯 했다. 어서 면회가 끝났으면 싶었다. 

“우리 고모, 오빠 보고 싶어서 왔네.”

마리아가 구세주였다. 뒤쪽에서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마리아가 여사에게 다가왔다. 환한 미소. 마리아는 웃고 있었는데 웃는 상은 나이가 들어도 변하지 않았다. 장식품처럼 옆에 있던 남편이 형님하고 손을 내밀었다.

그 역시 웃는 상이었다. 보기에 좋았다. 부부가 한 자리에 서서 웃는 모습처럼 아름다운 모습이 있을까. 승길은 순간 그들이 행복하게 오래 살았으면 싶었다. 마리아의 세번째 남자가 마지막 남자이기를, 승길은 그 순간 생각했다.

결혼식을 올리지 않아 식장에서가 아니고 어디서인지 모르지만 두어 번 만나 본 사내의 손을 승길은 잡았다. 밖에서라면 알아보지 못할 얼굴이었으나 승길은 알은체를 했다.

“반가워. 자네, 요즘 돈 많이 번다며?”

너스레는 이런 때 필요했다. 분위기를 업하는데는 돈이 중요했다.

“오빠 알지? 우리 남편.”

“알아 안다고. 잘생긴 니 남편. 돈도 많이 벌고.”

마리아가 남편을 돌아보며 말했다.

“맞아? 맞지? 우리 부자지?”

대답할 틈이 없는 남자의 손이 거칠었다. 마치 통나무를 잡은 기분이었다. 태권도 사범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주먹으로 땅을 쳤겠지. 모래주머니의 구멍을 뚫었을 거야. 승길은 여자 같은 자신의 손이 부끄러워 얼른 손을 뺐다.

요양원 안은 밖과는 달랐다. 시원했다. 4인 침실이 모두 차 있었고 창가의 안쪽에 외삼촌이 누워 있었다. 올해로 세 자리 숫자를 차지한 외삼촌. 1926년생. 사자성어를 물어 올 때 마리아는 구청에서 보내준 선물을 받았다고 했다.

백세 기념품. 내용이 뭔지는 물어보지 않았다. 백세 기념품이라니. 재앙이 따로 없었다. 백세라니. 백을, 백이라고? 백이라는 숫자를 승길은 대단하고 위대하다는 뜻으로 몇 번이나 중얼거렸다.

“놀랄 것 없어. 고모도 곧 그렇게 될 거야.”

‘이거 왜 이래. 그런 말은 삼가 줬으면 좋겠어.’ 어머니의 백세라. 어머니의 백세도 외삼촌의 백세처럼 재앙일까. 승길은 답하지 않았다. 속으로면 백세, 백세하고 되뇔 뿐이었다. 어머니의 백세는 외삼촌의 백세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과연 그럴까.’ 그렇지 않을 거라는데 방점을 두고 싶었다. 저런 모습을 김말자 여사는 결코 아들에게 보이지 않을 것이다. 자존심 센 여사. ‘내 죽음을 타인에게 맡기다니. 난 그렇지 않아. 어느 날 자다가 죽을 거야. 집에서.’

“그러면 좋을까?”

여사가 들리지 않게 등을 돌리고 승길은 마리아의 말을 받아넘겼다.

“오빠 효자 인거 알거든.”

'싫어 난, 효자 싫어. 그건 축복이 아냐, 저주일 거야.' 하지만 백세가 되고도 더 살려는 의지가 있다면, 외삼촌처럼. 그 상황을 상상하면서 승길은 어처구니 없는 미소를 지었다. 백이라면, 일제 강점기를 살아낸 것이다. 

문득 왜놈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왜놈이 지배한 세상. 맞아, 외삼촌은 왜놈말에 능숙했다. 어릴 때 외갓집서 승길은 일본어책이 천장까지 닿아 있는 것을 보았다. 평생 선생질을 했던 외삼촌은 해방 후 왜놈들을 저주했다. 어느 날 그 책들은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아마도 그즈음 민족의식이 새로 들었던 모양이다. 특히 이광수에 대해서는 여러 차례 친일파라고 질책했다.

“승길아, 너 알지. 이광수라고 ‘무정’ 쓴 사람 말이다. 조선 천재였어. 그런데 그 사람이 친일에 앞장선 거야. 독립을 외치다가 영 가망이 없자 돌아선 거지. 그런 사람이 더 나빠. 웬줄 아니? 저런 똑똑한 사람도 친일하는데 우리 같은 무지렁이들은 알아서 기어야지, 이런 상황이 펼쳐지거든. 해방 후 친일반민족 행위자에 대한 재판이 진행될 때 그가 뭐라고 한 줄 아니? 조선이 독립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하고 반문했다는 거 아니니. 내 참, 독립될 줄 알았다면 친일하지 않았다는 거잖아. 백배사죄해도 부족한데 내가 이런 사람을 조선 문학의 선구자라고 학생들에게 가르쳤을 거야 아마.”

그런 부끄러움 때문인지도 몰랐다. 외삼촌 영향으로 승길은 나중에 머리가 크고 나서도 이광수 책은 쳐다도 보지 않았다. ‘조기교육이 이래서 중요하거든.’

승길은 짐작해 보았다. 그 사람은 생각했겠지. '해방됐다고는 하지만 잠시 뿐, 다시 일본에 점령되겠지. 조선인은 스스로 나라를 다스릴 능력이 없거든. 난 쭉 친일로 갈거야. 반일한 자들은 후회하겠지.'

만족하는 승길, 스스로 생각해도 그런 이유외에 달리 그를 위해 변명할 거리가 없다.

'나를 단죄해서 역사의 본보기로 삼으시오. 후대들에게 이보다 참된 교육은 없을 거외다.' 그리고 자신의 부역 사실을 낱낱이 고한다. '내가 부역 했기 때문에 다른 부역자들의 실상을 나보다 잘 아는 사람은 없소. 그들의 죄도 여기서 실토하니 기자들은 부역자들의 죄명을 기록하시오. 그리고 전파하시오.'

역사의 법정에 그는 독립선어서를 외칠 때처럼 피를 토한다. '나를 밟고 또 밟고 가시오, 그리고 외치시오 조선독립만세.' 이랬더라면. 인정 많은 조선사람들, 그를 다시 조선의 천재로 추앙했을터. 그의 작품들과 함께. 

승길의 생각은 끝이 없다. 나찌 부역자들을 프랑스는 철저히 단죄했다. 수 만명을 감옥에 가뒀고 수 천명을 사형에 처했다. 카뮈처럼 춘원도 그랬더라면. 자비 또 자비를 베풀었을 텐데. 

'진실을 다투는 순간이 오면 정의가 자비를 침묵 시켜야 한다.' 카뮈는 부조리를 참을 수 없었던 것이지. 한 번 레지스탕스는 영원한 레지스탕스.' 백세 노인을 문병와서 역사의 함정에 빠진 승길. 

그런 승길의 구원자는 백세노인. 외삼촌이 끙, 하고 소리를 냈다. 아직 귀는 살아 있다. 노인들은 특히 늙은 남자들은 귀부터 맛이 간다고 하는데 외삼촌은 다르다. 열린 귀로 상황을 파악 한다.

그리고 온 몸으로 '나 아직 살아 있다'는 표시를 한다. 서너 명이 우루루 들어가자 누구인지 일일히 이름을 불러보고는 또 부른다. 모르는 사람이 올리 없으니 아는 사람일 터. 주춤 거리던 어머니와 승길이 기회를 보다 마리아가 권해준 등받이가 없는 의자에 앉는다. 

구십 삼세의 어머니가 백세 오빠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동생 왔구먼."

침묵을 깨는 외삼촌. 무슨 말이 필요할까? 말문을 쉽게 열지 못하는 동생의 고민을 덜어준다. 그리고 승길에게 눈길을 준다. 눈도 살아 있다.

"네가 승길이지 아마."

부사 아마를 뒤에 붙였지만 그건 단정할 수 없다는 의심이 아니라, 못 미더워서가 아니라 그렇다는 확신이다. 그리고는 순간 얼굴이 찌그러졌다. 다시 못 볼 사람들.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는 듯했다. 끌려가는 황소처럼 눈이 갑자기 커지는 외삼촌. 

“아빠, 고모 왔어. 물 건너 고모. 알지 고모? 첫째 여동생.”

“누구라고?”

“고모라고 물건너 고모.”

통역처럼 마리아가 이쪽저쪽으로 눈길을 돌리면서 같은 말을 반복했다.

“알아, 알지. 내 동생도 못 알아 볼까봐.”

하하하, 웃음 소리가 병상에 가늘게 퍼져 나갔다. 대단하다는 칭찬의 공감. 승길은 그런 외삼촌의 손을 잡았다. 뼈마디가 느껴졌다. '살집이 없구나. 사위 손은 떡두꺼비 같던데.' 승길은 그런 손이 차가워 슬며시 어머니에게 밀었다. 잠시 어색한 분위기가 흘렀다.

“외삼촌, 이광수 알지요?”

입 모양을 보고 외삼촌이 그렇다는 시늉을 했다.

“그놈 나쁜 놈이지요?”

고개를 끄덕하기 위해 뒤로 젖히자 입이 조금 벌어졌다. 윗니 세 개가 나란히 빠져있다. 아랫니는 뒤로 쳐진 치아 한 개가 위태롭게 걸려 있다. 혀를 조금 세게 밀면 금방 입술 밖으로 튀어나올 정도였다.

치아는 너무 가늘어 치아가 아니라 가느다란 젓가락 같았다.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이빨로 무얼 먹을 수 있을까. 외삼촌이 얼굴을 만지기 위해 손을 들었다 다시 놓았다. 여사는 그 손을 잡지 않았다.

승길이 그 손등을 쓸어 보았다. 손가락과는 달리 어떤 특이한 점은 없었다. 심줄도 느껴지지 않았다. 손을 놓고 슬쩍 소매를 위로 밀어 올렸다. 뼈가 드러났다. 이번에는 가볍게 요를 끌어 올리는 것처럼 하면서 가슴을 만졌다.

튀어나온 갈비뼈가 섬뜩했다. 뒤로 물러나 천천히 얼굴을 살폈다. 마치 더는 볼 수 없는 소중한 문화재처럼. 살이라고는 없었다. 뼈의 골격이 유지되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눈썹도 빠지고 머리카락은 몇 개나 붙어 있는지 셀 수 있을 정도였다.

산송장이 따로 없구나. 저것이 사람의 얼굴인가, 살이 없고 뼈만 있는 저 형태가. 피골상접, 시쳇말로 '뼈말라.'

"먹어도 살로 안가. 다른 것이 다 잡아 먹어 오빠. 아마 암세포일거야."

동의하지도 그렇다고 아니라고 부인하지도 않았다. 그저 멍때리는 얼굴로 쳐다 볼 뿐. 한때는 존경해 마지않던 얼굴은 이제 사라지고 없었다. 공경할 수 없는 얼굴. 사랑스럽지 않은 얼굴. 그것이 백세 노인의 얼굴이었다.

하지만 승길은 내색할 수 없었다. 옛날 그대로의 외삼촌 대하듯이 상냥한 표정을 지었다. 또다시 침묵. 이럴 때 여사라도 나서 한 마디하면 좋으련만 아무런 말도, 아무런 표정도 없다. 여사만의 의사 표현은 아무런 표현도 하지 않은 것이다. 

마리아가 눈짓했다. 가자는 신호였다. 승길은 건강해져서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거짓말을 했다. 건강해질 수 없는 몸인데도. 의사가 아닌 간난 아기라도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지경까지 왔다는 것을 알텐데도.

승길은 그런 거짓말이 그를 안심시키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달리 할 말이 없어 그렇게 작별인사를 했다. 죽음이 임박했다는 징후는 여러 곳에서 포착됐다. 외삼촌은 그걸 거부하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억지로 무언가를 하려는 듯한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눈이 스스르 감겼다. 아니 일부러 감은 것이다. 그때 승길은 그 눈에서 눈물이 흘러 내릴지 모른다는 느낌이 받았다. 피하고 싶었다. 눈물은 나와도 볼을 타고 흐르지 못할 것이 뻔했다. 그게 어디 눈물인가. 눈자위 주변을 더 짓무르게 할 뿐. 더구나 백세 노인의 눈물 같은 건 보고 싶지 않았다.

“가고 싶다.”

희미한 외침이 눈물 대신 입술 사이를 비집고 나왔다.

“집으로”.

자신을 집으로 데려갈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백세 노인은 그렇게 말했다. 혹시 너라면? 승길을 바라 보는 듯한 깊은 눈이 애원하고 있었다. 숱하게 했을 그 말. 집으로 가고 싶다.

마리아는 못 들은 척 일어섰다. 승길은 김여사의 손을 잡고 일으키면서 감히 눈이라고 하기도 어려운 눈 비슷한 회색의 안구를 외면하지 않고 잠시 응시했다. 체념하면 좋으련만 같은 느낌은 그 순간 들지 않았다. 집으로 가고 싶어 한다는 말은 마리아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오빠, 아빠가 집으로 자꾸 가자고 하네. 그러고 싶지만 누가 볼까. 그럴 형편이 안돼. 대소변도 이젠 가리지 못하는데. 화장실도 혼자서는 못가거든. 그리고 월세방도 지난달에 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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