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뉴스]
오. 비극은 연달아 온다고 했다. 36년의 일제 압제에서 막 벗어났다 싶었는데 이번에는 전쟁이 터졌다. 동족상잔의 피비린내가 한반도 전역을 덮었다, 장마철 먹구름처럼.
보령 방구리 시골 마을은 처음엔 조용했다. 워낙 산골이라 전쟁의 참화를 피하는 듯싶었으나 시간의 문제일 뿐이었다. 청년들은 징집됐고 사망통지서가 잇따라 날아들었다. 하선의 운명도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었다.
전쟁이다, 육이오. 전쟁이 터지고 3달 후 방구리에도 전쟁의 소식이 전해졌다. 승길의 아버지 하선은 그때 겨우 18살이었다. 3대 독자였던 하선은 전쟁을 피했다. 원래 3형제 였으나 위로 연년생 두 형이 참전 3개월 만에 철원 고지에서 모두 사망했기 때문이다.
삼형제에서 졸지에 집안의 독자가 된 하선. 하지만 전쟁은 독자에게도 마수의 손길을 뻗치기 시작했다. 그보다 나이 어린 친구들도 끌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채 서너 달이 안돼 무더기 전사 소식이 전해졌다.
오십 가구 정도의 마을에 곡소리가 그칠 날이 없었다. 사망자가 늘수록 전쟁은 더 참혹해 졌다. 전선도 엎치락뒤치락 죽기 아니면 살기식의 살육으로 피범벅이 됐다. 미군을 선두로 세계 각국에서 유엔군이 속속 한반도 남쪽으로 들어왔다.
이들 덕분에 남한은 탱크를 앞세운 북한에 일방적으로 밀렸던 초반전의 열세를 딛고 대등한 상황으로 전세를 끌어 올렸다. 승기를 잡은 남한은 통일의 염원에 한발 다가섰다. 그러다 다시 뒤로 후퇴. 낙동강 전선의 벼랑끝에 몰렸다. 돌파구가 필요했다. 하지만 이승만 정부는 대전에서 부산으로 도망치기에 바빴다.
그 무렵 하선에게도 소집영장이 날아왔다. 나비처럼 새처럼 그것은 조용하지 않고 왁자지껄한 소리를 냈다. 동네 사람들은 모두 하선 집안은 대가 끊겼다고 혀를 찼다. 군대가서 살아 돌아온 사람이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한 번 가면 죽어서 오는 곳이 바로 전쟁터였다.
피할 수 없는 운명 앞에서 하선은 어쩌면 자신은 다른 사람과 달리 살아서 돌아올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불안한 가운데 가졌다. 설마 자신까지 죽을까? 그런 심정이었다. 살아서 오기만 하면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희망은 잠자리에 누우면서 암흑으로 변했다. 앞이 보이지 않는 깜깜함. 호롱불조차 꺼진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며칠을 하선을 보냈다. 나 죽으면 늙은 모친은 누가 돌보나. 가슴에 돌덩이를 얹어 놓은 듯 하선은 숨쉬는 것조차 버거웠다.
하선은 일제때도 면장이었고 지금도 면장인 자의 소행은 아닐까 그런 의심까지 들었다. 이장의 손에 들린 조잡한 소집영장을 보았을 때 하선은 그런 느낌이었다. 소학교 중퇴인 자신의 글씨보다도 못한 삐뚤뻬뚤한 글씨.
가짜는 아닌가? 하지만 하선은 피할 수 없었다. 영장이 나온 것을 동네 사람들 모두가 아는 사실 앞에서 달리 다른 도리가 없었다. 이것이 운명인 것을. 승길은 체념했다. 체념하자 모든 것이 원래 제자리로 돌아온 것 같았다.
먼저 간 친구들과 친구 동생에 대한 체면도 서는 것 같았다. 그들의 원수를 대신 갚겠다는 마음 한구석의 분노도 일었다. 미안한 감정을 씻어 낼 수 있는 기회라고 여겼다.
또 전쟁터에 가서 다 죽는 것도 아니다. 누군가에게 기적이 있다면 그 기적이 자신에게 올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장은 돌아서면서 살아서 올 수도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노모는 자신이 어떻게든 살펴보겠다고 했다.
거짓말쟁이 이장의 말을 믿은 것은 아니지만 살아서 올 수도 있다는 말은 믿어 보기로 했다.
사흘 후 홍성 병무청에 도착한 하선은 생각보다 덤덤한 상태였다. 떠날 올 때 보였던 눈물도 없고 떨리는 가슴도 없고 되레 무언가 기대하는 설렘 같은 것이 있었다. 병사계는 서둘렀다. 여러 사람앞에서 급하게 서류를 작성했다.
곧 하선은 연병장으로 쓰고 있는 병무청 앞마당에 대기하고 있는 검은 트럭에 올라탈 운명이었다. 그때 누군가 그의 어깨를 툭 툭쳤다.
“자네가 여기 웬일인가?”
하선은 자초지종을 말했다.
“삼대 독자는 아니지?”
“선생님, 위로 두 형이 몇 달 전에 사망했어요.”
하선은 그 말을 하고 말문이 막혔다. 진정됐던 가슴이 방망이질 치기 시작했다. 소학교 5학년 담임 선생님을 보자 갑자기 억울한 마음이 생겨났다. 책을 읽어 주고 산수 문제를 풀어주던 둘째 형. 업어주고 산으로 데려가 칡을 캐주던 큰 형.
“형들은 다 죽었어요, 철원에서요.”
“좀 기다려봐.”
놀란 눈의 선생님은 병무계를 불렀고 뭐라고 몇 마디 했다.
"엉뚱한 사람에게 소집영장이 발부 됐네요. 이건 저 사람 것이 아닌데요."
그 말을 하면서 병사계는 뒷목을 잡았다. 하선은 트럭 대신 걸어서 웅천으로 돌아왔다. 새벽녘에 집에 도착한 하선을 보고 하선 모친은 까무라쳤다. 강릉최씨는 외쳤다.
“귀신이 왔다. 귀신이다. 죽은 큰 아들이다. 아니 둘째다.”
그런 소란을 겪고 3개월 뒤 하선은 다시 홍성 병무청에 도착했다. 이번에는 제대로 된 영장이었다. 손으로 쓴 것이 아니라 타이프로 작성된 것이었다. 틀림없었다. 문서가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붉은 직인이 증명하고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하선은 병사계에 있던 선생님을 찾아 두리번 거렸다. 하지만 선생님은 서울로 이동한 뒤였다. 병사계는 하선의 인사를 받고도 모른 척 했다. 하선은 최전방 전선으로 급파됐다. 형들처럼 하필 철원으로.
겨우 보름 교육을 받고, 젊은 시절을 기뻐할 틈도 없이. 서울행 기차를 타고 예산을 거쳐 수원쯤 왔을 때 하선은 전쟁을 실감했다. 그제서야 하선은 옥선이를 떠올렸다. 노모의 얼굴은 기억속에서만 희미하게 어른 거렸다. 옥선이는? 옥선이는 어찌되나. 건너마을 옥선이는? 그와 함께 꾸었던 꿈은. 하선은 설움이 복받쳐 올랐으나 그걸 얼굴에 드러낼수는 없었다.
전선은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엠 육공 방아쇠 당기는 연습도 채 마치기 전에 뛰어든 전쟁에서 하선은 많은 죽음과 죽어가는 병사들을 보았다. 며칠 지난 시체를 밟고 미끄러질 때는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절규했다.
그러나 절규할 시간 조차 전쟁은 용서치 않았다. 내가 살려면 적을 죽여야 했다. 백병전을 치를 때는 지옥이 따로 없었다. 하선은 열심히 찌르고 뺐다. 누가 가르쳐 준것이 아니었다. 사방으로 피가 튀었다. 연습과는 다른 실전에서 하선은 다른 것은 생각할 수 없었다.
고지의 어느 지점인지는 모른다. 돌격 앞으로 소리에 따라 함성을 지르면 산을 타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적들은 교통호 속에서 찌르기 좋은 거리까지 다가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순식간에 따발총 소리가 들렸다. 엎드릴 시간 조차 없었다. 퍽퍽 쓰러져 나가는 동기들. 하선은 어느 순간 혼절했다.
수류탄 파편이 귀를 때렸다. 승길은 평생 아버지가 왼쪽 귀 때문에 고생한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아버지는 투입 1년 3개월만에 부상병으로 의가사 제대했다. 어머니는 그 사이 돌아가시고 없었다.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었다. 다리를 절뚝이며 한 쪽 귀까지 먼 상태로 집에 도착한 하선을 반긴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분통이 터질 일이었으나 하선은 이장의 말대로 전쟁이라고 모든 사람이 죽는 것은 아니다라는 말을 실천에 옮긴 방구리의 유일한 참전 용사가 됐다.
“아버지, 여기 이곳은 아버지가 30년 전에 전쟁을 치렀던 바로 철원 철책입니다.”
입대 후 첫 편지에서 승길은 '아버지 전상서' 다음 문장으로 이런 편지를 보냈다. 1985년 10월 어느 날 승길은 이등병 배지를 달고 102 보충대를 거쳐 철원 땅으로 이동했다.
육공 버스를 타고 한 시간여 산비탈을 넘고 다리를 지나 산속 깊숙한 곳으로 이동했다. 103사단 38연대 3대대정문 앞에서 승길은 신원을 확인한 후 3중대 행정반으로 향했다.
“너 인마. 사단이나 연대에서 남으라고 하면 일빵빵 소총병으로 가겠다고 해. 제대로 군대를 배워야지. 그래야 해방 일꾼이 되는 거다.”
술에 취한 승길에게 대학 선배들은 혀꼬부라진 소리로 이렇게 떠들었다.
무슨 말인지 잘 이해되지 않았지만 승길은 끝까지 가보자고 다짐했다. 기왕 하는 군대 생활 뭐 빠지게 하고 싶었다. 그 당시는 그런 혈기가 있었다. 하선의 두 형을 생각하면 못할 것도 없었다. 승길은 그때를 생각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다시 입대하라면 난 사단에 남을 거야. 나쁜 선배놈들.’
승길이 선배를 욕한 것은 그들이 말한 그런 일들이 실제로 벌어졌기 때문이다. 기간병들이 사단 막사에 들어와 서류철을 넘기며 사단에 남을 장정들을 추려내기 시작했던 것이다. 보충대에서 몇 명이 남았고 사단에서 또 몇 명이 남을 예정이었다.
"자기 소개를 써봐. 시간은 10분 준다."
정확히 10분 후 군복이 어울리는 기간병들이 에이포 용지를 걷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쓱 쓱 읽어 보고는 승길이 누구냐고 불렀다. 벌떡 일어선 승길.
"네, 장정 이승길."
“너 여기 남아서 정보부에 근무할 용의 있나?”
승길은 지체없이 대답했다.
“없습니다.”
그걸로 끝이었다. 얼마나 단호했던지 기간병이 말을 붙이지 않고 승길을 툭 치고 힐끗 째려보고는 지나갔다. 아니꼬운 놈이라는 시선이 전해졌다. 승길 다음으로 다른 장정이 호명됐고 그는 그들을 따라 더블벡을 챙겨 막사를 떠났다. 다은날 승길은 다른 남은 장정들과 함께 연대로 이동했다.
연대에서는 행정병이 어떠냐고 역시 비슷한 서류철을 들고 온 기간병이 물었다. 그들은 강요하지 않고 친절하게 물었다. 승길의 대답은 같았다, 사단에서 했던 것처럼.
“아닙니다.”
대대에서 승길은 일빵빵 보직을 정식으로 받았다. 그리고 중대에서 소대로 이동한 후 이등병 견장을 팔뚝에 달았다. 장정의 꼬리표를 뗀 것이다.
소대에서 3달 정도 생활한 후 승길은 보직이 깡패라는 말을 실감했다. 사단 막사에서 친하게 지냈던 장정 동료가 승길 부대를 방문했다. 먼저 알아본 그가 웃으며 말했다.
"잘 지내니? 니가 거절 한 후 내가 정보부에 같잖아. 여기 생활은 어때?"
그는 말투부터 달랐다. 다까로 끝나지 않으면 바로 조인트가 날라오는 이곳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군인이 아닌 민간인 같이 편하게 말을 붙여왔다. 바짝 군기가 들 승길이 선임병들의 눈치를 살폈다.
“피에스 가자. 내가 닭발 사줄게.”
피엑스 라니. 피엑스가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그곳에 가본 적이 없었던 승길. 감히 이등병이 드나드는 공간이 아니었다. 아, 보직이 깡패구나. 고참들의 눈치도 보지 않고 그는 승길의 팔을 잡고 피엑스로 향했다.
"애는 내 동기에요. 한 30분후 돌려 보낼테니 그렇게 알고 있어요."
고참들은 아무말도 못했다. 암묵적인 동의라고 승길은 눈치로 알아챘다. 그는 가면서 너 있는 곳을 알았으나 지나가는 길이 있으면 들르겠다고 했다. 여유. 이등병도 여유 있는 보직이 있구나. 그가 짚차를 타고 연병장에 먼지를 뿌리며 떠나갈 때 승길은 생각했다. 보직이 깡패구나.
"힘들면 연락해."
그가 명함 하나를 건네 주었다. 이등병도 명함이 있나. 승길은 명함의 전화 번호를 외웠다. 하지만 승길이 전화를 거는 일은 없을 것이다. 휴가가 아니면 전화기는 언감생심이었다.
이등병 생활은 고됐다. 첫 겨울을 넘기는 것이 여간 고비였다. 언 계곡물을 깨고 물을 길러야 했다. 고참들의 라면 국물을 위해. 봄이 왔다. 승길도 제법 군인티가 났다.
지오피 근무를 막 끝낸 승길 대대는 페바 지역에서 훈련했다. 훈련은 아주 빡셌다. 연병장을 돌다 쓰러지는 동기도 있었다. 점호를 끝내면 녹초가 됐다.
하지만 잠을 설칠 때도 있었다. 밤에 더욱 뚜렷하게 들리는 대남 방송이 귀청을 때렸다. 그 무렵 동기 하나가 군화에 대고 식스틴을 발사했다. 다른 동기는 탈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