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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장은 자기 비하의 말을 하지 않고 여유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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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장은 자기 비하의 말을 하지 않고 여유가 있었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6.11.04 09: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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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뉴스]

심삽. 군대서 알던 사람을 사회에서 만나는 건 어리석은 일이었다. 예비역들은 다들 군대라면 치를 떨던 시절이었다. 그쪽을 보고는 오줌도 누지 않는다는 맹세를 하고 위병소를 떠나는 제대 병장들의 각오는 그만큼 단단한 것이었다.

하지만 뭐든 예외라는 것이 있다. 김정수 병장은 거기에 속했다. 군대서 많은 것을 배우고 익혔다는 자기 충만이 나름대로 있었다. 사회서 얻지 못한 것을 군대서 얻었으니 군대야 말로 자신에게 고마운 존재였다. 치를 떨어도 가장 상단에 있어야 할 사람인데 그러지 않고 되레 반대였다. 

승길은 그런 김병장에게 미안한 마음, 빚진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종로에 오면 연락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했고 열에 세 번 정도는 연락을 취했다. 유일하게 연락하는 사람이 김병장이었다. 단지 동기라는 이유만은 아니다. 어쩐지 그래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드는 것이다. 

김병장도 싫어하는 내색 없이 반갑게 맞아 주었다. 자신에게 연락을 취해오는 유일한 동기였다. 서로 야자 할 사이니 다른 이유가 없다면 일년에 한 두 번 정도는 만나지 못할 이유도 없었다.

알지 못하는 그 세계 즉 금은 세공업에 대한 이야기에 승길은 관심을 두었다. 그러다보면 두어 시간은 금새 지나갔다. 몇 번 만나다 보니 김병장은 처음과는 달리 장애인의 족쇄에서도 어느 정도 풀려난 듯싶었다. 습관적으로 내뱉던 다리 병신이라는 비하 발언도 더는 쓰지 않았다.

“그런데 말이야 너 강중령 알지? 왜 우리 소대장했던.”

“알다마다. 니가 지난번에 얘기했잖아. 중령으로 진급했다고.”

“한 번보자고 연락 왔더라. 너를?”

“아니 우리 둘.”

▲ 소대장은 이등병인 승길과 정수에게 피엑스 빵을 사주었다.
▲ 소대장은 이등병인 승길과 정수에게 피엑스 빵을 사주었다.

승길은 강중령이 자신을 기억하기는 할까. 순간 그런 생각을 했다. 막 이등병으로 입대했을 때 소대장이었던 육사 출신의 참신한 하급장교. 군기 바짝 들은 그는 같은 처지의 이등병에게 유독 관심을 가졌다.

피엑스로 데려가 자기 돈으로 빵을 사주기도 했다. 행군이나 작업 후 휴식시간이면 입대 동기인 승길과 정수에게 노래를 시키기도 했다. 거기에는 이등병들이 이렇게 고참들을 위해 애쓰니 갈구지 말라는 깊은 의도가 깔려 있었다. '너희를 위해 웃겨주는 이등병이다, 잘 봐줘라' 하는 소대장만의 용병술이라고나 할까.

승길은 그때 감히 김지하의 시 ‘타는 목마름으로’ 에 곡을 붙인 노래를 불렀었다. 이른바 민중가요 혹은 데모송. 겁이 없던 시절이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이등병이었기에 선곡이 가능했던 그 노래.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를 외치던 그 노래가 어떤 의미인지 소대장은 알았을까. 처음 들었다고 해도 예사롭지 않은 가사. 그러나 소대장은 노래가 끝난 후 박수를 쳤고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다.

전두환이 알았다면 바로 영창 보냈을 사안인데도 소대장 역시 군대 짬밥이 짧아 겁이 없기는 이등병과 마찬가지였다. 지금 돌이켜 보면 등골이 오싹한 일이었다. 빨갱이 순화교육으로 학생들 녹화사업을 하던 바로 절정의 그 시기에. 

‘소대장이 고자질 하지 않았다는 걸 어떻게 아느냐고?’ 그 뒤로 승길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니까. 노래 후 소대장은 되레 더 친근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정수에게도 승길 만큼 관심을 소대장은 보였다.

자신을 알아주고 인정해 주는 사람을 위해 죽을 수 있는 남자의 세계에서 정수는 군대 체질이었다. 사고만 없었다면 말뚝을 '꽉'하고 단단히 박고 말았을 김정수 병장. 

그는 음치인 승길보다 노래를 잘했다. 거기다 박자에 맞춰 춤까지 췄다. 정수는 '소양강 처녀'를 불렀고 소대장은 앵콜을 요청했으며 '삼포로 가는 길'로 화답했다. 고향이 강원도였던 소대장은 '소양강 처녀' 목을 뒤로 빼면서 까지 따라 불렀고 군가를 부를 때처럼 주먹을 쥐고 앞뒤로 흔들었다.

노래 후 고참 들은 각기 다른 이유로 승길과 정수를 대했다. 그 다름이 어떤 것인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거친 욕설이나 구타 대신 친근한 눈빛과 가벼운 말을 붙여오는 횟수가 늘었다. 그렇게 이등병 생활이 익어갈 무렵, 일병 진급을 얼마 앞둔 시점이었다.

지뢰가 터졌다. 그건 분명 자신의 앞길에, 직업 군인이 가는 길에 누가 된다는 것을 소대장은 직감했다. 하지만 그 책임이 자신에게 있는 것처럼 투입된 분대장이나 하사를 책망하지 않았다.

사전 교육 부실로 부하에게 책임을 돌리지 않았다. 육사 선배의 도움으로 구사일생 살아난 소대장은 정수를,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군 병원에 세 번이나 빵과 과자를 들고 면회 가기도 했다. 승길도 하루 외박을 얻어 다리를 천장으로 매달고 있는 정수를 찾은 적이 있었다. 성남에 있는국군수도통합병원으로.

그때 김이병은 소대장에 대한 감사의 말을 했다. 자신 때문에 소대장이 고생한다고. 매복 중 지뢰 터진 게 어찌 소대장 책임인가고 반문하기도 했다. 평생 불구로 지내야 할 그가 소대장을 옹호했다.

자신보다 강소위를 먼저 걱정했다. 그날의 일들이 스쳐 지나갔다. 승길은 정수가 소대장에 대한 애정이 너무 과하다 싶었다. 따지고 들자면 소대장 책임이 왜 없겠는가? 하지만 승길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그의 말에 동의를 표했다.

여러 달 후 원래 발목 대신 쇠로 된 가짜 발목을 달고 정수는 퇴원했고 곧 제대했다. 그 무렵 승길은 나름대로 군 생활을 터득해 가고 있었다. 파견이라는 파견은 도맡아 했다. 정규 휴가 전 일주일 포상휴가를 받기도 했다. ‘놀다 왔는데 파견이라고?’ 승길은 이게 군대라고 여겼다. 하루는 소대장이 불렀다.

“너 대학생 교육대 조교로 가는 게 어떠냐?”

말은 동의를 구하는 형식이었으나 그것은 명령이었다.

“이따 중대장님이 부를 거야. 일종의 면접이지만 내가 다 말해 놨으니 부담 갖지 말고.”

대학생 교육대는 승길도 잘 알고 있었다. 대학 2년을 마치면 보통 가는 전방 입소 일주일 교육 과정. 승길은 1학년 때는 문무대 교육을 받았다. 1학년 일주일과 2학년 일주일 보름 교육을 받고 무려 3개월 일찍 제대하는 혜택.

남들은 30개월 하는 육군을 27개월 만에 제대한다. 엄청난 특혜다. 늦게 입대해 일찍 제대하는 경우가 생긴다. 지금 생각하면 황당한 그런 일이 80년대는 있었다. 하도 말도 안 되는 일이 비일비재해서 그런 일은 말도 안 되는 축에 들지도 못했다.

“참 세월 빠르다. 강소위가 강중령이 되다니.”

그 말 끝이 끝나자 마자 김병장이 이런 말을 했다.

"강중령이 만나자고 하던데."

승길은 귀를 바짝 세웠다. 이건 고민이 필요하다. 노가 정답인데 승길은 망설였다. 지긋지긋한 계급사회를 사회로 연장할 수 있나. 만나면 존칭을 써야 하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푸른 제복의 시기를 끄집어 내야 한다. 망설이는 승길과는 달리 김병장의 생각은 달랐다.

승길에게 같이 가자고 조르다시피 했다. 당연히 기뻐하면서 찬성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어긋나자 심각한 표정으로. 김병장은 자신과 승길의 처지를 동일하게 봤다. 못 만날 이유가 없다는.

김병장에게 소대장은 그냥 소대장이 아니었다. 자신을 구원해 준, 목숨을 살린 은인이라고 그는 지난번 만남에서 여러 차례 말했었다. 술 김에 한 말이지만 진심이 담겨 있었다. 승길은 그런 김병장을 조금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봤다.

“소대장 아니었으면 난 죽은 목숨이야. 페바로 이동하면서 헬기 지원을 요청했잖아. 너도 아는 거고 현장에 있었으니. 그 무렵 난 피를 너무 많이 흘려 기절 직전이었다. 헬기가 곧 온다는 말로 겨우 정신 줄을 붙잡고 있었다. 그가 진급을 이유로 미적댔다면 지금쯤 난 송장 상태로 다 썩었을 거야.”

승길은 답답했다. 이게 지뢰로 발목이 잘려나간 영구 장애인이 할 소리인가. 언뜻 승길은 그런 부정적인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곧 사라진 발목은 소대장하고는 무관하다고 바꿔 생각했다.

소대장을 만나야 할 사람은 그가 아니라 자신이 이어야 한다는 엉뚱한 기대감이 들기도 했다. 이런, 승길이 결정하지 못하고 망설이자 의외의 반응이라는 듯 금세공업자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금두꺼비를 주문했는데 금송아지를 만들었을 때의 그 당혹감이 순간 스쳐 갔던 것이다.

“그건 그렇고 무슨 일로 보자는 거야. 그리고 너는 그렇다고 쳐도 나는 수년째 연락도 안 했는데.”

“어, 내가 네 이름으로 금을 선물했거든.”

“내 이름으로?”

승길이 놀라자 그가 바로 부연 설명했다. 중령 진급 소식을 듣고 말똥 두 개를 금으로 만들어 그가 대장으로 있는 3대대로 보냈지. 3사단 13연대 3대대 3소대 김정수, 이승길 올림, 하고. 덧붙여 소대장님의 대대장 진급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라는 문구와 함께.

“미안하다. 말도 안 하고 해서.”

미안한 것보다도 승길은 금값이 얼만데? 하고 되물었다.

“그건 내가 한 거야. 내가 금 만지는 사람인데 두 돈 어치는 하루 청소만 해도 생긴다. 금가루는 흔해, 여기 공장에서. 어, 그런 표정 짓 지마. 정 미안하면 오늘 술값, 니가 내라.”

“어이없다, 어이없어. 북치고 장구치고. 내가 종로오면 언제나 전화 걸까 말까 망설인 이유가 이제 밝혀지는군. ”

승길은 떨떠름한 표정을 애써 외면했다.

물 차지 않았다는 대왕도령의 말에 들떴었나. (아니 이젠 그렇게 부르지 말아야지. 오라버니, 동생하는 사이인데. 그녀의 원래 이름은 화길이었다. 굳이 이름 풀이를 하지 않았으나 여자 이름치고 보통 이름은 아니었다. 민화길. 성을 빼고 부르면 화길아 혹은 화길이. 그래, 화길이 말에 내가 오버했어. 별로 내키지 않는 전화를 불쑥한 거야. 군대 상사를 사회에서 만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이런 젠장.)

“그쪽으로는 오줌도 안 누겠다는 굳센 맹세는 어디로 간 거야.”

“그러는 너는? 나에겐 왜 연락하는데?”

“넌 다르지. 생사를 같이한 동기잖아.”

정수가 살짝 미소를 지어 보였다.

"생사를 같이했다? 너 바른 말했다. 소대장이 그런 사람이야. 더구나 좋은 사람이고. 너도 알지? 소대원들을 도구로 쓰지 않았어. 동생처럼 대했잖아. 얼차려도 확실한 이유 있을 때만 했고. 그리고 야, 우리 이등병들이 구타 없이 지낸 건 다 소대장 덕이다. 소대장이 눈 부라리고 구타 근절 외쳤잖아. 그리고 니 노래 실력이 늘어난 것도. 은인이야 은인.”

“그렇지, 고맙지.”

승길은 인정했다. 그리고 대학생 조교를 추천해 준 것도 소대장이다. 그렇다면 은인이 맞나. 은인이란 단어가 나왔을 때 승길은 저도 모르게 어깨를 들썩였다. 군대에서 은인이 있을 수 있는가. 하지만 은인일 수도 있었다. 교육대 조교 생활이 말 그대로 천국의 나날이었기 때문이다. 지옥에서 천국으로 한순간에 점프한 것이니.

중대장 면담 후 일주일도 안되 승길은 더블백을 메고 사단 사령부로 떠났다. 간단한 신원조회를 받고 모든 보급품을 에이급으로 받았다. 전투복, 전투화는 물론 양말, 팬티까지 몸에 걸치는 모든 것을. 심지어 개인화기도 새것으로. (당시 쓰던 식스틴은 베트남 전쟁에서 사용했던 것이 많았다. 그래서 영점이 잘 맞지 않았다.)

민간인 그것도 대학생들 앞에 헌 것으로 무장한 기간병의 모습으로 나설 수는 없을 터. 육공 트럭을 타고 민정 경찰이 간혹 사용하던 연병장에 내렸을 때 승길은 공기가 다른 것을 느꼈다. ‘여긴 민간인 냄새가 나네. 심지어 분냄새까지.’

이곳은 군인들이 생활하는 곳이 아니라 민간인이 노는 놀이턴가. 연병장 중앙에는 태극기가 높게 달려 있었다. 막사와는 다른 민간인 주택처럼 보이는 건물이 제법 보기 좋게 서 있었다. 교육대 사령부로 쓰이는 조립식 2층 건물이었다.

그 건물 주변으로는 검은 막사 14개가 일정한 크기와 간격으로 들어섰다. 보기 좋았다. 곧 조교들은 각 막사의 책임자가 됐다. 막사 하나에는 학생 1개 소대가 머물렀다. 일개 소대는 대략 20명 정도. 승길이 책임져야 할 소대는 3소대 였다. 왼쪽에서 세 번째 막사였다.

소대는 2개를 하나로 묶어 구대라고 칭했으므로 교육대의 총 구대 수는 7개였고 구대마다 구대장이 있었는데 대개 '말갈이 중위'가 구대장 역할을 했다. 조교들은 구대장의 지휘 통제 아래 있었다. 대충 점검을 마치고 연병장에 모였을 때 조교들의 계급은 상병이 절반 이상이었고 나머지는 병장을 달고 있었다.

이등병은 승길이 유일했다. 키가 크고 사람 좋아 보이는 (군대에서 사람이 좋아 보이는 장교를 만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구대장은 승길에게 당장 이등병 계급장을 떼고 병장 계급장을 달라고 했다.

그날 저녁부터 이등병은 병장이 됐다. 병장의 무게로 학생들을 통제하라는 속 깊은 뜻이 담겨 있었다. 그날 저녁 사령부에서 간단한 학생 교육이 실시됐다. 이미 교육대 입소 경험이 있는 기간병들이라 교육대를 이해하는데는 문제가 없었다.

그리고 조교하면 떠오르는 각진 에프엠 교육이나 태권도 유단자 같은 것도 필요 없었다. 안경잡이 승길이 조교가 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구대장을 통제하는 선임은 대위가 맡았고 구대 전체의 사령관은 대령이었다.

연대장급인 대령이 기간병 14명과 장교 7명을 관리했다. 그만큼 당국은 대학생 교육대에 심혈을 기울였다.

사령관은 말했다.

“조교들이 제 역할을 해줘라. 너희들은 선발된 요원이다. 책임이 크다. 일주일간 정신교육을 똑바로 시켜라. 학생들이 학교로 돌아가 데모하는 일이 없도록. 무사히 일 년 교육 마치면 사단장 표창을 받을 거다.”

당시 정권은 전두환이 잡고 있었다. 5.18 민주화 운동을 구데타로 강제 진압한 그는 대학생들의 눈치를 조금은 봤을 것이다. ( 온갖 부정의 대명사인 그는 정권의 구호로 정의사회구현을 내세웠다.)

하지만 곧 본색을 드러냈다. 회유와 협박이 먹혀들지 않으면 강제로 군대로 끌고 갔다. 이른바 빨간 머리를 초록 머리로 바꾸는 녹화사업의 일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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