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를 찾아 가는 나의 발걸음은 새털처럼 가벼웠고 행복했다.
은혜 비록 우리의 아기는 잃었지만 천만다행으로 그대가 살아 있다니
꿈에도 잊을 수 없었던 그대가 살아 있는 모습 빨리 보고 싶소.
이 못난 본이를 그대는 생명을 걸고 육신으로 영혼으로 사랑해 주었구려.
나의 첫사랑 순이는 7년동안 계속 저울질하며 경계하며,
나의 단점만 들여다보며 나의 애간장을 타게 하였으나
나의 참사랑 은혜, 그대는 만난지 한달도 안 되어 오직 나의 장점하나 나의 순정에 확신을 갖고 그대의 모든 열정을 나에게 불어 넣어 주었지요 그대의 불타는 정열은 저 무한한 공간에서 벌어지는 우주쇼, 빅뱅의 에너지를 능가하고도 남음이었소이다.
내 어찌 그대의 뜨거운 포옹을 잊으리오.
내 애타게 그리던 어머니의 포옹을 그대가 대신 하였소이다.
기차로 버스로 달리고 달려 충청남도 나의 어머니의 고향 덕산에 위치한 수덕사에 당도하였다.
깊은 산 숲속에 자리 잡은 수덕사, 높이 보이는 대웅전 기와지붕만 보아도
가슴이 방망이질 치듯 심장이 뛰고 숨이 가빠 온다.
이곳에 오니 新 여성 운동으로 유명한 나혜석(1896-1948)여사가 떠오른다.
여사는 수덕사 여승(신여성)김일엽과 교류하기 위하여 절 앞에 위치한
한 여관에서 수개월동안 체류한 적이 있다.
"나의 삶이 걸작이 되고 싶어요!" 라고 외쳤던 님께서는
근대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이자 근대 최초의 여성작가이다.
나혜석은 기존의 가부장적 질곡 속에 얽매여 있던 여성들의 정치적 해방과
권익 회복을 위해 봉건 질서와 인습 파괴에 온몸으로 대항하며 살다간
선각자이자 여성해방론자 이기도 하다.
여성의 지위와 가치에 대한 나혜석의 인식은 그 당시로 보자면
가히 혁명적인 것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