뿔피리 부는 사람. 깔깔대며 친구, 동료들과 환호하는 사람.
얼어붙은 몸을 감싸 안은 채 그래도 행복해 얼굴을 활짝 편 연인들...
거리를 가득 메운 인파는 거센 물결처럼 포도를 휩쓸고 지나간다.
만백성 모두 행복하고 배부른 하루인가보다.
어른들 든 손엔 모두 어린아이들을 위한 선물 보따리가 쥐어졌고,
아이들은 신나게 뛰놀다 기쁨의 선물을 기다리며
긴 선물 양말을 머리맡에 걸어 놓고 깊은 잠에 빠져든다.
모두들 행복하다. 부러운 게 없다.
12시 30분전 나는 이미 서울역 시계탑 앞에 서 있다.
축제의 중심 명동거리와는 반대로 서울역 광장은 쓸쓸하기 그지없다.
밤기차 막차도 이미 떠나 버렸고 가는 사람도 없고 오는 사람도 없다.
오직 나만이 혼자 시계탑만 가끔 올려다보며 그녀. 은혜를 기다린다.
어스름한 가로등을 등에 업고 왠 여인이 다가온다.
나의 가슴이 쿵쾅거린다. 쿵쿵쿵쿵.
은혜가 벌써 나타났나! 아 아니라니까?
거간 아줌마가 다가 왔다.
"아저씨 뜨끈뜨끈한 방 있어요. 쉬었다 가요.
아닙니다. 만날 사람 기다리는 중입니다.
거간꾼 아줌마는 자나갔다.
강추위 한냉한 고기압 북서풍이 회오리를 일으키면서
눈보라가 되어 나의 뺨을 세차게 내려친다.
나는 발을 동동 구른다.
손끝을 입김으로 녹여본다.
라디오 방송에서는 30년 만의 강추위가 닥쳤다 한다.
시계탑 시침이 정확히 25일 0시를 가리키고 있다.
갑자기 동쪽 하늘위에서 푸른 섬광이 내리 꽂히는가 싶더니
나의 양미간을 스치며 서쪽 하늘로 사라졌다.
깜짝 놀라 주위를 살펴 본다.
인적이 끊긴지 오래 된듯 야멸찬 겨울 칼바람만이 살기를 드러내며
텅빈 광장을 휘젖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