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전쟁을 다룬 올리버 스톤 감독의 걸작 <플래툰>( 1986)의 숱한 명장면 가운데 하나는 주인공이 무릎을 꿇고 양팔을 머리위로 들어 올리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포스터로도 쓰였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미국식 애국심이 물씬 풍겨나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1998)로 전쟁영화의 또 다른 신화를 썼다.
두 영화를 서두에 언급하는 것은 이만희 감독의 <돌아오지 않는 海兵>이 이들 영화에 적잖은 영감을 틀림없이 주었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 에서는 초반 전투신이 볼만하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쯤 돼 보이는 긴박한 상황에서 적과 아군의 교전이 실감나는 효과음과 화려한 영상으로 관객의 눈길을 확 사로잡았다.
이만희 감독은 인천상륙작전인 것 같은 장면을 첫 화면에 배치했다. 장갑차가 해안가로 상륙하고 적의 기관총이 불을 뿜는 장면은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첫 장면과 똑같다. 철책 이냐 목책 방어선이냐의 차이뿐이다.

<플래툰>에서 주인공이 무릎을 꿇는 장면 역시 이만희 감독은 1963년에 이미 사용했다. 걸작 외화 두 편이 <돌아오지 않는 海兵>의 오마주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그에 버금가는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예로 든 것이다. ( 두 명의 외국 감독이 영화를 만들기 전 이 영화를 봤는지 안 봤는지는 모른다.)
각설하고 이 영화는 반공영화이면서 반전영화다. 당시 영화가 반공일변도 인 것에 비해 획기적인 시각이 아닐 수 없다. 북한군 대신 괴뢰군이라거나 빨갱이라는 단어가 거침없이 나오는 것으로 봐서 틀림없는 반공영화다.
전쟁의 참혹함과 누구를 위한 전쟁이며 왜 죽어야 하느냐고 비참하게 묻는 장면에서는 반전영화가 확실하다.
적의 십자포화를 겨우 뚫은 강대식(장동휘) 분대장이 이끄는 해병대는 심하게 불탄 폐가에서 잔당을 소탕하기 위해 작전을 편다. 이 와중에 달아나던 엄마는 죽고 어린 소녀 영희( 전영선)는 살아남는다.
2층에 올라가자 즐비한 시신의 더미가 있다. 양민 가운데 분대원( 이대엽)의 여동생도 끼어 있다. 전쟁은 이처럼 참혹한 것이다.
상륙작전을 마친 분대원들은 탱크를 앞세우고 북으로, 북으로 진격한다. 영희는 분대원들과 함께 생활한다.
잠시 휴식을 취하던 분대원들은 새로운 전입병( 구봉서, 최무룡)을 받아들이는데 전입병 가운데 하나는 분대원의 누이를 죽인 빨갱이의 동생이다.
동생과 분대원은 또한 중학교 친구로 서로 알고 지내는 사이다. 형은 북한군이고 동생은 국군으로 전쟁에서 서로 맞붙은 것이다. (민족 간 이념 전쟁은 다른 어떤 전쟁보다도 처절하다. )
분대원은 형의 얼굴을 꼭 빼닮은 전입병에게 ‘이 개놈의 종자’ 하면서 주먹을 날리고 둘은 싸우고 갈등한다. 그러나 전투를 거듭 하면서 서로 이해한다.
영희는 대원들에게 두꺼비 양코 털보 등의 별명을 지어주고 구봉서는 전쟁의 아비규환 가운데서도 웃음을 선사하는 코미디언 역할로 영화에 활력을 불어 넣는다.
분대는 어느 전선에서 중공군과 맞닥뜨린다. (낙동강 전선은 아니다. 여기까지 중공군은 내려오지 않았다.) 꽹과리와 북을 치며 인해전술을 펴는 중공군의 기세에 대원들은 하나 둘 꽃잎처럼 쓰러져 ‘돌아오지 않는 해병’이 되고 겨우 둘 만 살아온다.
3중대 1소대 42명 가운데 사망이 39명 실종이 1명이라고 인원보고 하는 장면은 영화의 라스트 신으로 아주 좋다. 산 자들은 수많은 사람이, 수많은 사람을 죽였다고 전쟁을 증언한다.
나머지 대원들은 용감히 싸우기 보다는 잘 싸웠지만 뛰는 심장위에 훈장을 달지 못하고 눈 내린 하얀 들판에 시체로 누워있다.
국가: 한국
감독: 이만희
출연: 장동휘, 구봉서, 최무룡, 이대엽
평점:
팁: 전쟁 중에도 외박이 있고 휴가가 있다. 해병대원들도 외박을 간다. 부대 대항전 기마전에서 승리한 기념으로 분대장이 한 턱을 쏜 것이다.
분대장은 대원들을 이끌고 양공주( 당시 표현)들이 있는 럭키 크럽으로 향하는데 이곳은 같은 전선에서 싸움을 하지만 한국군은 출입이 금지다.
마담은 이국땅에서 고생하는 UN군들을 위해 특별히 허용된 곳에 ‘엽전’들이 왔다며 해병대를 거부한다. 아가씨들도 한국군을 한 수 아래로 본다.
그냥 돌아오면 해병대가 아니다. 너희 같은 것들을 보호하기 위해 우리가 죽는다고 악을 쓴다. 그리고 의자를 들어 창문을 부수고 장식품을 아작 내고 부순 대가로 돈을 뿌린다. ( 나중에 마담은 오늘 밤만은 외제품을 사절한다며 분대장과 의기투합하고 분대원들은 각자 아가씨 방으로 들어간다)
대검으로 찌르고 뻬는 교통호 속의 리얼한 전투신, 폭음과 연기가 피어나는 엄청난 화력의 물량공세, M1소총 소리를 내기 어려워 직접 실탄 사격을 하고 (부상자가 나왔다고 함. 수색작전을 할 때 들리는 군홧발 소리는 심장의 박동처럼 거칠다.) 거대한 민둥산에서 일렬횡대로 내려오는 장쾌한 스케일의 중공군의 모습 등은 볼수록 신기하다.
촬영 내내 군부대의 적극적인 지원이 이루어 졌다고 한다. 박력 있는 연기, 치밀한 연출, 대담한 촬영, 한국 전쟁 영화의 수작(위키 백과 참조)은 두 번 이상 말하고 싶다.
그물에 매달리고 낮은 포복을 하는 유격훈련, 들려오는 애잔한 나팔소리, 힘찬 군가 등이 입대 시절의 향수를 자극한다. 모포를 둥글게 말고 야삽을 매단 군장, 위장된 철모 등의 추억도 새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