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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앞으로 온 몸을 밀고 나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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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앞으로 온 몸을 밀고 나가며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8.03.12 14: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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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온 몸을 밀어내려고 고개를 숙인다. 그러면 서로 가까이 있는 어깨도 덩달아 그렇게 된다. 발도 비쭉비쭉 따라 나선다.

달려 나간다. 개천을 따라 앞으로 나아갈 때면 완행열차의 창문으로 획획 지나가던 풍경이 슬로모션으로 반복된다. 저녁을 먹고 한 시간이 채 안됐으니 몸이 가볍지 않다.

느리게 밀어내는 이유다. 사실 그 반대로 하려고 생각도 해봤다. 그러다가 곧 생각보다 몸이 말을 듣지 않을 거라는 지레짐작으로 포기한다. 쓰레기가 걸려 지저분한 개울을 건넜다. 

여전히 무거운 상태로 팔을 휘두른다. 몸처럼 팔도 빠르지 않고 느리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는다. 벌써 이런 달리기 생활이 두 달 째를 넘기고 있다.

다리 아래를 지나자 한강까지 삼천미터 지점이다. 출발선에서는 그 보다 더 멀 것이다. 한 20분 정도 시간이 지났다. 흔들리는 시계를 보지 않아도 대충 짐작이 간다. 늘 그런 페이스로 해왔다.

여기서 더 느릴 수는 없다. 빠른 걸음으로 지나가는 사람이 앞질러 간다. 아무리 느려도 달리기인데 이럴 수는 없다. 달리기 하는 사람으로 걷는 사람에게 질 수는 없다. 속도를 낸다.

금세 앞지른다. 그렇게 더 얼마를 내달린다. 지지않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이기지 않기 위해 달리기를 시작했는데 벌써 그것을 잊었다.

휴 하고 작은 한 숨을 내쉬고 흰 선이 그려진 원으로 접어든다. 원의 둘레는 500미터에 조금 못 미친다. 이마에 작은 땀이 난다.

쓴 모자를 벗어 상의 호주머니에 찔러 넣는다. 삐죽이 뛰어 나온 것이 달릴 때 팔의 안쪽과 부딪쳐 껄끄럽다. 꺼내서 오른손에 쥔다. 선선한 바람이 기분좋게 얼굴 사이로 파고든다. 

기쁘거나 슬프지 않는데도 눈물이 어른거린다. 이것은 어떤 병적 징후다.

검색을 해보거나 병원에 갈 생각은 없으나 뺨을 타고 흘러 내려서 닦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달리기를 멈추지는 않는다. 원을 다 돌지 않고 길게 뻗은 직선으로 내달린다. 조금 속도가 난다. 붉은 색을 칠한 길에서 무언가 휙 지나간다. 자전거다. 빠르다.

등을 새우처럼 굽히고 있는데 사라지는 모습이 곡선이어서인지 부드럽다. 이번에는 앞지를 생각을 포기한다. 러너가 자전거를 뒤로 돌릴 수는 없다. 그러니 앞서 가려는 정신보다는 뒤로 쳐지려는 몸의 여유가 느껴진다. 

꽃을 심으려는지 공터는 맨 흙이 드러났다.

쉬고 있는 포크레인이 어둠 속에서 희미한 형체를 드러내면서 나, 오늘 열심히 일했어! 그러니 잠을 자고 있는 거야. 녀석이 말을 걸어왔다. 희미한 가운데 노란색 사물이 피곤하니 내버려 두라고 손을 까분다.

나는 수긍하면서 지면의 발을 계속해서 앞으로 움직인다. 느려도 붙어 있을 새가 없다.

폐가 살아난다. 들이쉬면 낮 동안 죽은 것이 다시 피어나고 있다고 몸 속의 허파가 응답한다. 심장도 제법 크게 울린다. 쓰지 않던 근육이 힘을 키우느라 여기저기서 아우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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