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조금 차가워 졌다.
빨리 찾아온 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는 건너뛰는 법이 없다. 좋지 않은 것은 언제나 우리 주변에서 떠나지 않고 머문다. 덕분에 미세먼지가 사라졌다.
우울한 마음을 끌고 오는 그것이 눈에 보이지 않자 경쾌한 달리기가 시작됐다.
오늘도 역시 가는 길은 같다. 개울을 건너고 천변을 향해 남쪽으로 향한다. 조금 늘어난 폐가 좀 더 확장된 기분이다.
돈 들지 않는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위해 뛰는 만큼 즐거운 생각만 하자고 다짐했다. 다른사람이 하는 것처럼 자잘한 것을 사거나 자기것이라고 낙인찍는 즐거움은 나와는 거리가 멀다.
폐가 출렁 거린다. 계속 늘어나고 있다. 갈비뼈 안쪽의 깊은 곳 까지 왔다. 더는 안 된다. 뼈를 밀어 내고 밖으로 나오는 것은 이인이 원하는 바가 아니다.
코로 들이쉰 상쾌한 공기가 한가득 폐에 가득 찬다. 이 정도 라면 폐렴 같은 걸 염려할 필요는 없다.
결핵이나 만성폐쇄성폐질환이나 폐기종이나 폐암을 전문으로 다루는 의사는 나에게 할 일이 없다.
들어간 산소가 신선하니 머릿속이 지리산 피아골의 개울물처럼 맑다.
의도적으로 콧구멍을 옆으로 벌려 숨을 길게 쉰다. 빨아들이는 힘이 장난이 아니다. 이 정도라면 폐기능을 재는 작은 빨대 속의 구슬들이 위쪽으로 몰려 내려가는 것을 잊을 정도다.
인두와 후두기관을 거쳐 기관지에 이른 공기는 폐포에 도달한다. 그렇지, 바로 그거다. 복부의 열이 감지된다. 체온이 오르고 있다. 다시 한 번 폐를 음미한다. 너무 오르기 전에 조절이라는 것을 하라고.
말도 잘 듣는 폐. 명령이 떨어지자 땀이 흐른다. 등줄기를 타고 시원하게 아래로 흐른다.
상선약수. 이 세상의 최선의 선은 아래로 흐르는 물이다. 물처럼 살고 싶다. 흐름이 멈춘 듯 조용한 천변의 물처럼 내를 건너 한강으로 강을 지나 바다로 가고 싶다.
앞질러 가는 자전거의 숫자가 늘어난다. 마주 오는 걷는 사람의 수는 더 많아지고 종알거리는 소리가 다 들린다. 모자를 쓰지 않아 열린 귀가 더 커졌기 때문이다.
갑자기 확 지린내가 풍긴다. 코가 할 일이 아니다. 이런 것은 맡지 않아도 좋으련만 코를 지났으니 잠시 후면 폐에 도달할 것이다.
던져 버린다. 포수가 마음은 아프지만 강타자를 거르기 위해 사구를 던지듯이 그렇게 한다. 호흡을 멈추고 굴다리를 통과한다.
아싸, 앗싸. 마의 구간이 지났다. 다시 히말라야 끝자락의 상쾌한 공기가 기도에 닿았다. 달리면서 히말라야를 떠올리는 것은 뭉친 다리 근육을 풀어주는 자동 안마기다.
굳었던 다리가 고산에 적응하는 것처럼 순조롭다. 히말라야, 혹은 킬리만자로의 최고봉은 이인의 버킷 리스트 중의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