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뉴스] 과거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와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국가의 감염병 대응 실패를 둘러싼 법원 판단이 향후 유사 사태 발생 시 국가 시스템 정비 및 운영 방안에 중요한 단초를 제공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박성민 변호사(법학박사)는 최근 대한의료법학회가 발간한 학술지 의료법학에 기고한 글에서, 메르스 30번 환자 사건과 서울동부구치소 코로나19 집단감염 사건의 국가배상책임 판결을 분석해 미래 감염병 대응체계의 사점을 제시했다.

박 변호사는 먼저 감염병 피해에 대한 국가배상책임 성립의 법적 요건으로 '공무원의 객관적 주의의무 위반 및 그로 말미암은 객관적 정당성 상실'을 핵심으로 꼽았다.
그는 지난 2015년 메르스 사태 당시 30번 환자 감염 사건을 예로 들었다.
이 사건에서 항소심 법원은 질병관리본부의 초기 대응 조치가 현저히 불합리했다고 판단해 국가의 배상책임(위자료 1000만원)을 인정했고, 대법원은 이 판결을 확정했다.
반면, 2020년 말부터 1100명 이상 집단감염이 발생한 서울동부구치소 코로나19 사건에서는 수용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으나, 현재까지 법원은 수용자 측의 승소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박 변호사는 “법원이 신입 수용자 미검사, 전수검사 지연 등을 당시 예산ㆍ인력 등 현실적 여건에 비추어 합리적 범위를 벗어나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한 수준은 아니라고 판단했다”면서 "두 사건 판결 내용이 중요한 비교점을 제공한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어 두 판결을 바탕으로 우리나라 감염병 대응 법ㆍ제도와 운영체계 발전을 위한 주요 과제로 ▲초기 방역 골든타임 사수 및 취약시설 자원 집중 ▲감염원 조기 진단 시스템 확립 ▲고위험군 정의 확대와 선제적 보호망 구축 등을 제시했다.
먼저 메르스 사태 초기 1번 환자 확인 지연과 역학조사 누락으로 피해가 커졌던 경험을 반면교사 삼아, 정부가 이후 초기 즉각 대응체계 등을 강화한 점이 코로나19 초기 방역 성공에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반면, 서울동부구치소 사례는 교정시설이라는 특수 환경에서 초기 유입 차단에 실패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그는 “법원의 현실적 여건을 고려한 판단은 국가의 보호 의무 측면에서 아쉬움이 남는다”며 “향후 감염병 위기 시 구치소 등 집단감염 가능성이 큰 시설에 방역 자원을 신속하고 집중적으로 투입할 수 있는 대응 체계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한편으로는 메르스 1번 환자의 입국 시 검역 누락과 국내 병원에서의 진단 지연은 감염병 유입 사실을 조속히 파악하는 일의 중요성을 일깨웠다고 평가했다.
반면, 서울동부구치소의 경우, 2020년 11월 27일 직원 첫 확진 후 20일이 지난 12월 18일이 돼서야 수용자 1차 전수검사가 이뤄져, 이를 조기 진단 성공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메르스 사태 후 병원 감염 관리 개선 노력 덕분에 코로나19 유행 시기 병원 내 감염 문제가 크게 줄어든 것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서울동부구치소 사건 또한 교정시설 수용자가 감염병 고위험군임을 명확히 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 사건이 정부가 제3차 감염병 예방관리 기본계획(2023~2027년)에서 교정시설 등을 고위험군으로 명시한 배경이 됐을 것이란 설명이다.
이와 관련, 박 변호사는 “집단생활 이주노동자, 감염병 환자 치료ㆍ이송 의료인력, 역학조사관 등 우리가 경험한 교정시설 외 다른 감염병 고위험군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이들의 보호를 위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나아가 “과거 감염병 관련 소송에서 드러난 국가 대응의 한계와 법원 판단 기준을 면밀히 검토하는 것이야말로, 향후 발생 가능한 팬데믹 상황에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효과적으로 보호하는 방역 시스템 구축의 첫걸음”이라고 역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