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뉴스] 지난 1월, 대한의사협회 김택우 회장의 당선으로 공석이 된 강원특별자치도의사회장 자리에 이정열 회장이 당선됐다.
전례 없는 상황 속에서 치러진 보궐선거, 그리고 의대 정원 증원으로 촉발된 의료계의 혼란까지, 그야말로 ‘엄중한 시기’에 지휘봉을 잡게 된 이정열 회장을 만나 강원도의사회 운영 방향과 의료계 현안에 대한 그의 진단과 해법을 들었다.
이 회장은 “의료 행위의 본질적 위험을 외면한 채 의사에게 모든 책임을 지우는 현재의 사법 체계가 필수의료 붕괴의 진짜 원인”이라고 단언하며 “의료사고에 대한 국가 보상과 의료진 면책이 담긴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역설했다.

◆“누군가는 맡아야 할 자리, 회무 연속성ㆍ안정 위해 나섰다”
전임 회장이 의협회장으로 당선되면서 강원특별자치도의사회는 예상보다 빨리 새로운 리더를 선출해야 했다. 여러 중책을 맡고 있던 이 회장에게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이정열 회장은 “한림대학교 총동문회장과 올해 처음 맡게 된 강원도내과의사회장까지, 이미 여러 역할을 해 여력이 없을 것으로 생각해 처음에는 고사했다”면서 “하지만 춘천시의사회장, 강원도의사회 부회장 등을 역임하며 집행부 일원으로 함께해왔기에 회무의 연속성과 안정성을 이어가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꼈다”고 중책을 맡은 배경을 설명했다.
무엇보다 엄중한 시기였기에, 누구든 강원도의사회를 이끌어갈 일손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나서게 됐다는 설명이다.
이 회장은 “김택우 회장의 의협회장 당선은 강원특별자치도의사회의 자랑이자, 동시에 우리에게는 새로운 시작”이라며 “의사회가 흔들림 없이 안정적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고 힘주어 말했다.
◆“의사 형사처벌ㆍ수십억 배상이 필수의료 기피 원인”
이 회장은 현 의료 사태에 대한 정부의 진단이 처음부터 잘못됐다고 날카롭게 지적했다.
그는 “2000명 증원 정책으로 3만 명이 넘는 학생과 젊은 의사들의 미래가 깨졌고, 필수의료와 지역의료는 처절하게 망가졌다”며 “1990년대 말까지는 지방의료나 필수의료 붕괴라는 말이 없었으나, 2000년대 들어 의사들이 법정 구속되는 일이 반복되면서 심화됐다”고 지적했다.
실례로 2017년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사건 등 의사 구속 사례와 수십억 원의 민사 배상 판결을 언급하며 “밤을 새워 최선을 다해 치료해도 환자 상태가 나쁘면 법정 구속과 천문학적 배상 판결을 받는 상황에서는 누구라도 필수의료를 기피할 수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1990년대에는 주 160시간을 근무하고 밤샘 수술을 해도 보람이 있었다”며 “환자가 살아날 때의 그 보람을 산산이 깨부수는 것이 바로 형사처벌과 수십억 원의 배상으로, 의사들이 ‘차라리 안 하고 만다’며 필수의료 현장을 떠나고 있다”고 꼬집었다.
반면 “의료사고에 대한 국가보상과 의료진 면책’이 담보된다면 필수의료, 지역의료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면서 "의료현장을 모르는 비전문가들이 모든 정책을 결정하는 현재의 구조가 가장 큰 문제”라고 강조했다.
◆"회원 소통은 찾아가는 것, 의사회가 방패막이 돼야”
이 회장은 회무 운영의 핵심으로 ‘소통’과 ‘회원 보호’를 꼽았다.
그는 “지난 3월 경북 산불 피해 지원 성금 모금 당시 3000만 원이라는 큰 금액이 모이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면서 "사직 전공의들을 돕기 위한 ‘위드 닥터’ 캠페인도 마찬가지로, 함께 해야만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고 소회했다.
이어 “특별분회와 지역의사회를 정기적으로 직접 찾아가 대화하고 경청한 내용을 회무에 반영할 것”이라며 “이를 위해 젊은 개원의사들을 상임이사진에 합류시켜 미래 의사회의 중추적 역할을 하도록 기회를 열어줬다”고 전했다.
무엇보다 험난해진 의료 환경 속에서 의사회가 회원들의 ‘방패막'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이 회장의 생각이다.
그는 “의학이 심평의학, 사법의학, 정치의학으로 변질돼 올바른 진료가 어려워져 앞으로는 우리가 정책을 주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이를 위해 강원특별자치도의사회는 회원 민원고충처리 부분을 세밀하게 살피고, 건보공단, 심평원 등 지역 유관기관과의 유대를 강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법률 지원, 정책 제안 등을 통해 회원의 권익을 지키고, 전문가평가단 운영과 개원세미나 개최 등을 통해 자율정화 노력과 회원 지원을 동시에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고지가 눈 앞, 마음 모으면 위기 극복 가능”

이정열 회장은 김택우 의협회장에 대한 신뢰와 기대감을 밝혔다.
그는 “김택우 회장은 진정한 리더십을 가진 분으로, 진정한 리더십이란 자신이 드러나지 않아도 모두가 잘 되게 하는 힘”이라며 “지금은 드러나지 않지만, 대관업무팀이 물심양면으로 노력하고 있을 것”이라고 평했다.
이어 “매우 어려운 상황이지만, 지금까지 그랬듯 잘 해결할 것이라 믿는다”며 “고지가 바로 앞이니 부디 이 어려운 시기를 잘 이겨내 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정부에 맞서 병원을 떠난 후배 의사들과 학생들에게는 위로와 존경의 마음을 전했다.
그는 “오로지 잘못된 의료정책을 바로잡고 국민이 더 좋은 환경에서 진료받기를 바라는 순수한 마음에서 비롯된 행동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며 “이에 강원특별자치도의사회는 사직전공의지원단을 구성해 멘토-멘티 매칭, 일자리 사업, 세미나 등 실질적인 지원사업을 진행했다”고 소개했다.
이어 “이분들의 목소리가 있었기에 희망의 불꽃을 지필 수 있었다”며 “이분들의 미래를 끝까지 응원하고 지지할 것을 약속드린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어떤 회장으로 기억되고 싶냐는 질문에 이 회장은 “태평성대에는 백성들이 임금이 누구인지도 모른다고 한다”며 “저 역시 어떤 리더로 기억되기보다, 회원들의 생활이 평안하고 혼란이 없는 시기가 돼 회장이 누구였는지 굳이 관심을 가지지 않아도 되는 그런 의사회를 만드는 것이 가장 큰 바람”이라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