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유수유 직후 신생아의 동맥혈을 채혈, 저산소성 뇌손상을 입게 만든 의료진의 과실이 인정됐다.
이는 지난달 청주지방법원에서 선고된 사건과 비슷한 사례라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그 사건 역시 모유수유 직후 채혈한 한 영아에게서 뇌손상이 발생, 식물인간이 된 사례였다.
서울고등법원 제17민사부는 A양과 그 가족이 B대학병원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원심과 마찬가지로 환자 손을 들어줬다. 배상액은 3억 1450만원으로 2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한 1심보다 훨씬 커졌다.
태어난 지 1개월 된 신생아 A양은 갑자기 기침을 계속 해 B대학병원 응급실에 내원했다. 당시 A양의 산소포화도는 94~97%였고, 거친 숨소리와 쌕쌕거리는 소리를 냈으며 흉곽함몰도 있었다.
의료진은 A양에게 모세기관지염이 있는 것으로 보고 흉부 X-ray 촬영, PCR검사를 시행하고 흡입치료를 했다.
치료가 끝난 후 A양의 어머니 C씨는 약 5분간 모유수유를 했는데, 의료진은 모유수유를 중단시키고 동맥혈가스분석 등 혈액검사를 실시하기 위해 동맥채혈을 했다.
채혈 8분여 뒤 한 차례 구토를 한 A양은 청색증을 보였고 호흡도 하지 않았다. 심박수가 1분당 20~30회로 느려졌고, 산소포화도도 60% 미만으로 측정되는 등 심정지가 나타났다.
입안에서 모유가 관찰되자 의료진은 이물질을 제거하기 위해 A양의 머리를 낮춘 다음 등을 두드리고 앰부배깅으로 산소를 공급했다.
기관 내 삽관을 실시하고 혈압상승제 및 수액을 공급하며 심폐소생술을 하고 난 후 A양의 심박수는 분당 172회, 산소포화도는 99%로 회복됐다.
PCR검사 결과 A양은 호흡기세포융합바이러스(respiratory syncytial virus, RSV)에 감염돼 이로 인해 모세기관지염이 발생한 것으로 확인됐다.
A양에 대한 뇌 MRI 촬영 결과, 저산소성 뇌손상으로 인해 좌측 전상부 부위와 소뇌 부위가 위축돼 있었다. 현재 A양은 사지가 마비되고, 인지기능도 저하된 상태로 정상적인 일상생활이 어렵다. 현재 의료수준으로는 완치가 불가능하다.
A양의 부모는 “의료진이 모유 수유 직후 동맥 채혈을 실시해 기도가 막혀 저산소성 뇌손상을 입게 됐다”고 소송을 제기했다.
B대학병원 측은 "B씨가 의료진 지시를 따르지 않고 채혈에 앞서 모유수유를 했기 때문에 과실이 없다“며 ”기도 폐쇄는 모유흡인이 아니라 RSV감염이 원인이었다“고 반박했다.
1심 재판부는 부모의 손을 들어줬다.
1심 재판부는 “B대학병원에 전원한 A양에게 수포음, 거친 숨소리, 천명음, 흉곽함몰 등 호흡곤란 증상이 있었기는 하나 산소포화도의 수치가 94% 이상을 우지했다는 점에 비춰보면 위급한 정도는 아니었다”며 “B병원이 A양에 대해 응급으로 혈액검사를 실시할 필요가 있었다고 인정할만한 사정이 없었다”고 밝혔다.
이어 재판부는 “B대학병원은 영아의 경우 수유를 하고 1~2시간 정도 상당한 시간이 지난 후 처치를 해야 함에도 A양이 모유수유를 한 직후 이 사건 채혈을 실시한 잘못이 있다”며 피고는 원고들에게 2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시했다.
이에 불복해 진행된 항소심에서 재판부는 의료진의 과실을 인정, 1심보다 훨씬 늘어난 3억여원을 배상하라고 선고했다.
2심 재판부는 “일반적으로 영아에 대한 처치는 응급으로 시행될 필요가 있는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수유 직후 침습적인 행위를 하지 않도록 알려져 있다”며 “이는 영아가 주사의 통증으로 심하게 울면 공기를 많이 삼키게 돼 토하기 쉽고 대개 주사할 때 영아를 똑바로 눕혀놓은 상태에서 움직이지 못하도록 고정하므로 역류된 우유가 기도로 흡인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A양은 생후 1개월 미만의 영아였는데 모유수유 중임을 확인했음에도 A양을 검사실로 안고 들어갔고 채혈을 했다”며 “채혈 당시 의료진은 A양의 동맥혈을 태혈했는데, 동맥혈은 정맥혈보다 더 신체 내부에 위치하고 있어 이를 채혈하는 처치는 보다 침습적인 의료행위”라고 전했다.
재판부는 “의료진은 소화가 이뤄질 때까지 상당한 시간이 지난 후 처치를 했어야 함에도 모유 수유 직후 바로 채혈을 실시한 과실을 저질렀다”고 판시했다.
이와 함께 재판부는 “의료진도 심정지가 나타난 직후 그 원인으로 모유흡인에 의한 질식을 의심했다”며 “수유 직후 채혈을 한 과실과 RSV감염이 공동 원인으로 작용해 심정지가 나타난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재판부는 “A양이 채혈 당시 RSV에 감염돼 있었고, 동맥혈 채혈은 침습적인 행위로서 어느 정도 위험성이 수반되는 의료행위”라며 “RSV 감염 및 모유흡인으로 인한 기도폐쇄 모두 A양에게 발생한 무호흡과 심정지에 기여했을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참작하면 손해배상책임을 30%로 제한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