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형 간염을 조기에 진단해내지 못했다며 환자 가족들이 의료진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의료진 과실을 물을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또한 국립암센터가 진행한 간이식 수술의 과실도 인정되지 않았다.
서울고등법원 제9민사부는 최근 사망한 환자 A씨의 가족들이 의사 B, C씨, 그리고 국립암센터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소송에서 원심에 이어 원고 측 항소를 기각했다.
A씨는 지난 2008년 5월경 B씨가 운영하는 내과에 내원해 진료를 받았는데 당시 A씨는 목에 삼출물이 있고 충혈됐으며, 열과 오한이 있었다. 또 목이 아프고 숨소리가 거칠며, 기침과 가래가 있는 등 증상이 있었다.
B씨는 그 같은 증상은 급성편도염으로 진단하고 3일분의 소염진통제, 진해거담제, 항생제를 처방했다.
며칠 후 A씨는 다시 B씨의 의원에 내원해 머리가 너무 아프고 계속 토한다는 증상을 호소했고 B씨는 약을 바꿔 처방함과 동시에 위장장애에 사용하는 약들을 추가로 처방했다.
A씨는 C씨가 운영하는 내과에 내원해 감기약을 3일간 복용했는데 낫지 않고 구토 및 구역이 있다고 자신의 증상을 설명했고, C씨는 심전도 검사를 시행한 후 소염제, 해열제, 항생제를 처방했다. C씨는 A씨에게 소변검사를 하려했으나 소변이 나오지 않아 하지 못했다.
다음날 A씨는 상급병원 응급실에 내원해 3일전부터 전신허약감, 기침, 열이 있어 의원에서 처방받은 약을 복용하던 중 소변이 나오지 않고 숨이 차고 목이 붓는 증상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병원 의료진은 혈액검사 등을 통해 A씨의 병명을 ‘상세불명의 급성 신우염, 급성 A형 간염, 전격성 간염’으로 진단하고 간이식이 필요하다고 판단, 국립 암센터로 전원조치했다.
국립암센터는 A씨의 좌측 간을 제거한 후 공여자의 절제해 이식하는 간 이식수술을 시행했다.
수술 이후 A씨는 상태가 호전돼 일반 병실로 옮겨졌고, 의료진은 복부 CT검사 및 혈관조영술을 통해 A씨의 왼쪽 상부 상복부 동맥의 활동성 출혈과 왼쪽 간동맥 폐쇄를 확인한 후 출혈을 막기 위한 색전술을 실시하고 카테터로 간동맥을 개통했다.
이후 A씨는 패혈증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고, 암센터 의료진은 진단적 개복술을 시행해 췌장 주위에 있는 농양과 혈종을 제거했다. 수술 이후에도 A씨는 상태가 호전되지 않았고, 결국 패혈성 쇼크 및 그로 인한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사망했다.
A씨의 가족들은 B, C, 국립암센터를 상대로 모두 소송을 제기했다.
가족들은 B, C씨에 대해 “자세한 신체검진 및 증상호소에 대한 사려 깊은 감별을 하지 않아 A형 간염을 조기에 진단하지 못했고, 이로 인해 상급병원으로 전원시키지 못했다”며 “A형 간염환자에게 간독성이 있는 약물을 처방한 과실도 있어 피고들의 과실로 인해 A씨가 간 이식을 받은 이후 패혈증으로 사망했다”고 주장했다.
국립암센터에는 “수술을 시행하면서 이식된 간조직의 간문맥과 A씨의 간문맥을 적절히 연결시키지 못해 간문맥의 혈류가 막혔거나 간동맥 협착이 발생하게 했고 췌장을 손상시켰다”며 “의료진은 수술 이후 간동맥 혈류가 발견되지 않았으므로 복강 내 출혈을 의심할 수 있었지만 이를 치료하지 않아 췌장염을 일으켰다”고 지적했다.
1심 재판부는 가족들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1심 재판부는 “A씨가 B씨에게 호소한 증상인 전신허약감, 기침, 발열, 가래는 감기와 같은 질환에서 일반적으로 발생하는 증상”이라며 “A씨가 B씨에게 두 번째 진료를 받았을 때 구토, 메스꺼움 등의 증상을 호소하긴 했지만 발열, 오한 등 증상이 완화돼 있어 약 복용에 따라 주된 증상이 완화되고 있다고 판단할 여지가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C씨에게 진료를 받으면서 구토가 있고 가슴이 답답하다고 호소하기는 했지만 구토, 가슴 답답함은 A형 간염에만 나타나는 전형적인 증상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C씨는 A씨에게 소변검사를 실시하려다 소변이 나오지 않아 검사를 실시하지 못했는데 A씨가 지속적으로 소변이 나오지 않는다고 증상을 설명했다는 증가거 없는 이상 추가 검사를 시행하지 않고 A씨를 귀가시킨 것에 과실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이에 불복한 가족들은 항소를 제기했으나 2심 재판부의 판단은 1심과 같았다.
2심 재판부는 “약물에 의한 간기능 약화 또는 전격성 간염 발생은 극히 드물고 대개 과용량이나 장기적인 투여의 경우에 나타난다”며 “B씨와 C씨가 A씨에게 처방한 약물로는 이 같은 악결과가 발생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점 또한 인정할 수 있기 때문에 B, C씨가 약물을 처방한 것이 과실이라거나 이런 과실로 인해 A씨의 상태가 악화됐다고 보기 부족하다”고 전했다.
또 재판부는 “국립암센터에서의 간이식 수술 직후 A씨의 간 효소 수치가 정상치에 가까워지는 등 상태가 호전됐다”며 “초음파 검사상 간문맥 혈류가 거꾸로 흐르는 것이 관찰된 부위는 수술로 제거하고 남은 간 부분으로, 이런 현상을 수술 직후 손상돼 있던 간 부분에서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것이고 색전술 등의 치료로는 개선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간 이식 수술의 문합이 술기적으로 실패한 경우가 아니더라도 이식된 간이 기능을 하지 못하고 혈관저항이 높아지면서 혈류가 느려지면 간동맥, 간문맥에 혈전이 생길 수 있다”며 “A씨에게 간문맥 폐색은 발견되지 않았고, 간문맥 혈류 속도의 증가 등이 발견된 후에 실시된 초음파, CT 검사에서는 간동맥이 잘 개통돼 있는 소견을 보였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재판부는 “간 이식 수술 후 발생하는 췌장염은 수술에 의한 손상 외에도 수술 자체의 스트레스, 면역 억제, 혈액응고장애 등 다양한 원인이 있을 수 있다”며 “이식된 간으로 가는 혈류가 폐색됐더라도 혈류의 역행으로 췌장염이 발생하는 것은 아닌 점을 인정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사정에 비춰보면 국립암센터 의료진에게 원고들이 주장하는 수술 중 과실이 있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