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무장병원의 개설을 공모한 적 없고, 병원의 개설·운영을 의사 본인이 주도했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 의사에 대한 건보공단의 환수처분을 인정했다. 사무장병원 개설 공모가 아닌 비의료인의 의료기관 개설이 불법이라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서울행정법원 제13부는 최근 의사 A씨가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요양급여비환수결정처분 취소청구 소송에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A씨는 지난 2006년 2월부터 2007년 12월까지 B병원의 개설명의자이자 병원장으로 근무했다.
검찰은 지난 2015년 2월 건보공단에게 B병원과 관련해 C씨와 D씨에 대한 공소가 제기됐다는 내용의 인·허가관련 범죄 처분 통보를 했다.
검찰에 따르면 B, C싸는 B병원을 개설한 후, C씨가 인력채용과 의료시설 설치 등을 마치고 A씨를 개설 원장으로 고용, 제발 경영을 담당하는 방법으로 운영하다가 병원 명칭을 바꾼 뒤, D씨가 개설 원장으로 취임해 피고인들이 함께 운영하기로 공모했다는 것.
피고인들은 2007년 12월경 병원에서 매일 1100만원씩 병원 수익을 나눠갖기로 하고, 병원 직원과 의료시설을 그대로 이용해 해당 지역 보건소에 D씨의 명의로 E병원이라는 명칭의 의료기관 개설신고를 한 후 그때부터 2014년 8월경까지 D씨는 환자들을 진료하고 의료분야의 경영을 담당하며, C씨는 병원의 행정사무, 직원채용, 운영자금 조달, 금전 출납, 환자 유치 등 제반 경영을 담당했다.
검찰은 비의료인인인 C씨와 의사 D씨가 공모해 의료기관을 개설하고 건보공단으로부터 200억 4549만 원의 요양급여비를 지급받았다며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 혐의로 고발했다.
이에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의료법 위반·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을 유죄로 인정, C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DTl에게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D씨는 판결에 불복, 항소했으나 서울고등법원은 2016년 7월 7일 항소를 기각했다.
건보공단은 C씨와 D씨를 상대로 37억 7818만 원의 요양급여비용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는 한편, A씨에 대해 2006년 2월 20일∼2007년 12월 17일까지 의료법 제33조 제2항 개설기준을 위반해 의료기관을 개설한 C, D씨에게 고용돼 의료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47억 2558만 원을 환수 처분을 내렸다.
의료기관 개설을 규정한 의료법 제33조 제2항은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또는 조산사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의료업을 목적으로 설립된 법인 ▲민법이나 특별법에 따라 설립된 비영리법인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른 준정부기관, 지방의료원의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른 지방의료원,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법에 따른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에 해당하지 않는 자가 아니면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에 A씨는 “B병원이 아닌 E병원의 개설·운영에 관해 의료인이 아닌 C씨가 주도적으로 E병원을 개설·운영했다는 이유로 의료법위반 등의 유죄판결이 있는 건 사실”이라며 “그러나 B병원은 E병원과 달리 A씨가 의료인인 C씨의 요청에 따라 개설·운영한 것이고, C씨는 B병원의 개설·운영에 주도적으로 관여한 바 없다. B병원은 의료법을 위반해 개설된 이료기관에 해당하지 않는다”면서 소를 제기했다.
재판부는 A씨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재판부는 “의료법 제33조 제2항, 제66조 제1항 제2호, 제90조는 의료기관 개설자의 자격을 의사 등으로 한정하는 한편, 의료인이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없는 자에 고용돼 의료행위를 한 경우 면허자격의 정지사유로 정하는 등 의료기관의 개설자격이 없는 자가 의료기관을 개설하는 것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고, 이를 위반한 경우 형사처벌하도록 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자격정지 등을 규정한 의료법 제66조는 보건복지부 장관은 의료인이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면 1년의 범위에서 면허자격을 정지시킬 수 있다고 명기하고 있는데, 이중 각 호 중 하나에 해당하는 것이 ‘의료기관 개설자가 될 수 없는 자에게 고용되어 의료행위를 한 때’이다.
또 벌칙을 규정한 의료법 제90조에도 ‘의료기관 개설자가 될 수 없는 자에게 고용되어 의료행위를 한 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라는 규정이 포함돼 있다.
이어 재판부는 “의료인이 아닌 C씨와 의료인인 D씨가 각자 동일한 금액을 출자해 병원을 개설했고, 수익이 발생했다면 동등하게 수익을 배분받았을 것”이라며 “의료법인이 개설한 것이 아님에도 의료인이 아닌 C씨가 이사장 직함으로 근무하면서 병원 운영에 관한 사항을 결제했다”고 전했다.
재판부는 또, “A씨는 개설명의자였으나 병원 운영에 관여하지 않고 일정 금액의 월급만 지급받았고, C·D씨는 의료법 제33조 제2항을 위반한 범죄사실이 인정돼 유죄판결을 선고받았다”며 “건보공단이 C·D씨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해 청구가 인용된 점 등을 종합하면 이 사건 병원은 의료인이 아닌 C씨가 시설 및 인력의 충원·관리, 의료업의 시행, 필요한 자금의 조달, 운영 성과 귀속 등을 주도적인 입장에서 처리해 의료법 제33조 제2항을 위반해 개설한 의료기관”이라고 판시했다.
국민건강보험법 제57조 제1항이 정한 속임수나 그 밖의 부정한 방법으로 보험급여 비용을 받은 경우에 해당하므로 처분사유가 인정된다는 게 재판부의 설명이다.
이와 함께 재판부는 “A씨는 B병원의 개설·운영에 관해 의료인이 아닌 C씨와 공모한 바 없다고 주장하지만 이 사건 처분 사유는 C·D씨가 의료법 제33조 제2항을 위반해 이 사건 병원을 개설·운영함에 있어 공모했다는 것이 아니라 B병원이 의료법 제33조 제2항을 위반해 개설한 의료기관이라는 것”이라며 “따라서 속임수나 그밖의 부정한 방법으로 보험급여비용을 지급받은 경우라는 것이므로 A씨의 주장은 이유 없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