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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법에 반하는 약정, 계약 효력 상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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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법에 반하는 약정, 계약 효력 상실
  • 의약뉴스 강현구 기자
  • 승인 2017.04.05 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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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고등법원...“법률적 강제 어려워”

약정으로 인해 의료기관을 개설하기로 의기투합한 비영리법인과 사무장 간의 소송이 벌어졌다.

항소심까지 진행된 이 사건은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없는 개인이 비영리법인 명의를 이용해 의료기관 개설·운영하도록 한 약정은 의료법 제33조 제2항을 위반했다고 결론이 내려졌다.

서울고등법원 제35민사부는 최근 A법인이 B씨를 상대로 제기한 계약효력부존재확인소송에서 원심을 파기하고 원고와 피고 사이에 체결된 약정에 기한 계약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선고했다.

교통약자의 요양 및 재활치료와 관련된 병·의원, 요양원 설치 및 운영 사업 등을 목적으로 한 A법인은 지난 2015년 5월 경 병원을 설립하기로 하면서 B씨와 약정을 체결했다. B씨는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조산사가 아니면서 병원의 행정업무에 종사하던 사람이다.

A법인과 B씨 사이에 체결된 약정은 ▲A법인의 명의로 개설될 병원의 운영에 관해 B씨가 독점적인 사업권을 가진다 ▲B씨가 병원의 운영에 필요한 모든 비용을 부담한다 ▲A법인 명의로 개설될 병원은 B씨의 책임으로 운영된다 ▲A법인은 B씨가 정하는 사람을 상임이사로 해 병원 운영 전반의 업무수행 및 결정권한을 부여한다 ▲병원의 인원 구성은 B씨가 하되 A법인의 소속으로 채용하기로 한다 ▲병원의 수익금은 A법인 목적 사업을 위해 사용한다 등의 내용으로 구성됐다.

A법인은 2051년 8월경 B씨에게 이 사건 약정을 해지한다는 취지의 내용증명 우편을 발송했고, 법원이 계약효력부존재확인소송을 제기했다.

A법인은 “지난 2015년 3월경 이 사건 약정의 약정서 초안을 작성했는데 이 사건 약정은 초안보다 A법인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내용으로 되어 있다”며 “이 사건 약정은 불공정한 법률행위를 규정한 민법 제104조(당사자의 궁박, 경솔 또는 무경험으로 인하여 현저하게 공정을 잃은 법률행위는 무효로 한다)에 따라 무효”라고 주장했다.

또 A법인은 “이 사건 약정은 의사 등이 아닌 B씨가 법인 명의로 의료기관을 개설해 운영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것”이라며 “이는 의료법 제33조 제2항에 위반되는 것이므로, 이 사건 약정은 강행법규 위반으로 반사회질서의 법률행위를 규정한 민법 제103조(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한 사항을 내용으로 하는 법률행위는 무효로 한다)에 따라 무효”라면서 소를 제기했다.

고법 재판부는 원고 패소를 판결한 1심 재판부와 달리 A법인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민법 제104조 위반에 대해 “이 사건 약정 체결 전에 작성됐던 약정서 초안보다 이 사건 약정의 내용이 상대적으로 A법인에게 불리하다고 해 이 사건 약정이 민법 제104조에 위반된다고 인정할 수 없다”며 “달리 이 사건 약정이 불공정한 법률행위에 해당한다고 인정할만한 증거도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 사건 약정이 의료법 제33조 제2항을 위반해 무효라고 선고했다.

의료법 제33조 제2항은 ①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또는 조산사, ②국가나 지방자치단체, ③의료업을 목적으로 설립된 법인(의료법인), ④민법이나 특별법에 따라 설립된 비영리법인, ⑤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른 준정부기관, 지방의료원의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른 지방의료원,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법에 따른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이 아니면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없고, 제87조 제1항 제2호에 의하면, 제33조 제2항을 위반한 사람을 형사처벌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재판부는 “이 사건 약정은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없는 B씨가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있는 A법인의 명의를 이용하여 의료기관을 개설하고 운영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것이라고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재판부는 “이 사건 약정에 B씨는 A법인의 중앙회 업무에 대해 관련자료 및 기타 세무회계 자료를 B씨의 책임 하에 제출해 중앙회 업무에 협조해야 한다는 내용과 B씨는 B씨의 사업과 관련된 모든 운영상태 및 손익상황을 종합해 A법인의 요구가 있을 시 즉시 제출, 보고하여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기는 하나, 이는 A법인 명의로 병원이 개설되지만 피고가 전적으로 이를 운영하는 것과 관련해 A법인이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를 마련해 둔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또 재판부는 “이 사건 약정서에 병원 수익금이 B씨에게 귀속된다는 명시적인 조항은 없다”며 “B씨가 A법인 명의로 개설될 병원에 관한 독점적인 ‘사업권’을 가진다고 약정했고, 피고가 병원 운영에 관한 모든 비용을 부담하기로 했으며, 수익금을 ‘원고의 목적 사업’을 위하여 사용한다는 위 조항에 의거하여 병원의 수익금이 다시 병원 운영에 사용될 수 있으므로, 결국 A법인과 B씨는 병원 수익금의 전부 또는 대부분을 피고에게 귀속시키기로 합의했다고 인정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재판부는 “병원은 운영이 핵심이므로 순수익금은 병원 운병비를 제외한 돈으로, 병원 운영비의 적정성을 담보하거나 순수익금을 다시 병원 운영비로 사용하는 것을 억제할 수 있는 수단이나 방법은 별도로 마련돼 있지 아니하다”며 “B씨가 병원 운영에 관한 모든 비용을 부담하고도 피고에게 병원 운영의 이익은 귀속시키지 않는 내용의 약정을 했다는 것은 경험칙상 납득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재판부는 “이 사건 약정은 강행법규인 의료법 제33조 제2항에 반해 무효이고, B씨가 이를 다투고 있는 이상, 원고가 무효인 이 사건 약정에 기한 계약관계의 부존재 확인을 구할 이익도 있다”고 전했다.

재판부는 “변론 전체의 취지에 의하면, A법인은 이 사건 약정에 따른 병원 개설이 이뤄지기도 전에 B씨에게 해지의 의사표시를 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고, 앞으로 A법인이 자발적으로 이 사건 약정을 이행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이지 않는다”며 “이 사건 약정은 일방 당사자가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에도 그 이행을 법률적으로 강제하기 곤란한 내용으로 이뤄져 있다”고 강조했다.

또 “이 사건 약정 제12조 제4항에 의하면, 당사자는 특별한 사유가 없어도 1개월 이전에 서면으로 해지의 의사표시를 하면 이 사건 약정을 해지할 수 있다고 볼 여지도 있다”며 “이러한 사정에 비추어 보더라도 A법인이 이 사건 약정을 해지함에 따라 이 사건 약정에 기한 계약관계가 존재하지 않게 됐다고 인정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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