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쪽으로 난 두 개의 구멍이 벌름 거린다. 최대한 코에 뚫린 두개의 구멍인 콧구멍을 벌려 평수를 늘리는 것은 불어오는 상쾌한 바람을 냄새로 확인하기 위해서다. 좋다. 이 냄새 이어가야 한다.
한강 쪽에서 강한 서풍이 불어오고 있다. 임진강과 예성강의 냄새가 섞여 있다. 이 정도를 구분할 수 있으면 후각에 관여하는 위비갑개의 윗부분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엄포가 세다고. 아니다. 강화도 지나 교동도에 들어갔을 때 이인은 벌써 임진강과 예성강이 만나는 지점을 감상적으로 보다가 훅 끼쳐오는 그 냄새를 맡은 적이 있다.
그것은 바다냄새 같기도 했으며 아래로 흘러 내려온 한강 부유물이 섞인 냄새 같기도 했다. 바로 그 냄새가 지금 최대한 벌리고 있는 두 개의 콧구멍으로 들어온다. 대뇌가 그것을 벌써 감지했다.
북한 땅이 바로 보이는 그 곳에서 맡았던 그 냄새를 지금 오목교를 앞에두고 확인하고 있다.
어깨에 힘이 빠진다. 릴렉스를 원하지 않았는데도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다. 왼쪽으로 몸을 틀면서 작은 다리를 건넜다. 이 다리는 영등포 쪽에서 양천구 쪽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이다.
마치 국경을 넘어가는 기분이다. 판문점을 넘어오는 귀순 병사처럼 줄달음 친다. 하류 쪽이라 강폭이 넓어져 다리 길이도 길다. 하지만 난간은 채 50센티 미터도 안 되는 높이다.
아래쪽은 제법 눈이 어질할 정도로 거리감이 있는데 떨이지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있다. 하지만 다들 그런 걱정은 하지 않는가 보다. 자전거가 빠르게 앞서간다. 그림자 셋이 따라 붙는다.
다리위로 비치는 양쪽의 가로등과 강물 빛이 합쳐서 다리 위에만 서면 언제나 따라 오는 그림자가 셋이다. 앞서가는 내 그림자도 셋이다. 머리도 셋이고 몸통도 셋이다.
이 때쯤이면 손을 좌우로 휘두르지 않고 옆으로 수평 되게 만들어 위 아래로 흔들고 간다.
그러면 아랫배의 출렁거림이 더 심해지면서 더 뚜렷해진 세개의 그림자를 볼 수 있다. 이런 장난이라도 해야 당기는 엉덩이 근육 때문에 멈추고 싶은 욕망을 잠재울 수 있다.
달빛이 있다면 막 차고 올라오는 수많은 잉어 떼가 다리위에서 오르내리는 광경을 볼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흘끗 아래를 보다가 그대로 다리를 통과한다.
목동이다. 다리 하나만 건넜을 뿐인데 강남 다음으로 비싸기로 유명한 땅을 밟고 있다. 그 비싼 땅을 거침없이 치고 나간다. 내가 달려온 거리를 합산하면 평수로 도대체 몇 평이나 될까. 아마도 프랑스 파리 전체를 사고도 남을 돈 만큼은 될 것이다.
파리에 대한 추억이 떠오른다. 그러나 멈출 수밖에 없다.
그 사람이다. 무도병 이라도 걸린 듯 춤을 추듯이 몸을 아주 심하게 흔들면서 달리는지 걷는지 춤추는 지 모를 그 사람이 자전거 길에서 물결처럼 넘실거리고 있다.
언제나 그는 인도가 아닌 자전거 길을 쓴다. 제 길을 두고 남의 길을 가느냐고 묻고 싶은 생각은 없다. 거기는 자전거가 지나가니 위험하다고 이리로 오라고 말하고 싶지도 않다.
요즘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러려니 하는 단어를 떠올린다. 그러려니 하면 그 뿐이다. 그는 나를 봤을 것이다. 여러 번 아니 수 십번은 마주 쳤으니.
내가 그를 아는 것처럼 그도 나를 알까. 아니다. 모를 것이다. 그는 움직이는 동작에 신경을 쓰다 보니 마주 오는 사람을 보는 데는 약할 것이다.
상대방을 슬쩍 본다. 모자 쓴 아래로 눈망울이 깊고 주름은 숨길 수 없다. 50대 후반으로 보인다. 어제와 비슷한 옷을 입고 비슷한 모자를 쓰고 비슷한 표정으로 오늘도 그는 밤거리에서 흔들린다.
그는 왜 이런 이상한 자세로 온 몸을 비트는지 알 수 없다. 그런 자세로 움직이니 나보다 느리다. 하지만 속도를 잴 수는 없다. 앞질러 갈 수도 없는 것이 그는 늘 반대편에서 오기 때문이다.
버드나무 가지가 더 아래로 늘어졌다. 곧 망울이 질 것이고 잎이 나면 그 아래서 꿈꾸기 좋은 계절이다. 오목교 아래에 도착했다. 보도 블럭 때문에 자연히 생긴 일자금을 밟자 마자 두 말 없이 몸을 한 바퀴 돌린다.
보이는 풍경이 사뭇 다르다. 이제는 왼쪽으로 강물이 따라온다. 물은 거스르지 않고 내려가고 오른쪽은 넓은 개활지로 각종 운동 기구가 있고 산책로가 아기자기 잘 정돈돼 있다.
그 한가운데 하트 모양이 반짝인다. 안에는 그네가 있다. 하트 모양은 연달아 이어놓은 전구 때문에 언제나 밝고 반짝 거린다. 그네위에 남녀가 앉아 있기도 하고 혼자 일 때도 있으며 텅 빌 때도 있다.
10년 만 젊었어도 저기로 곧장 달려갔을 것이다. 그래서 호기심 어린 눈으로 보고 앉아서 앞뒤로 흔들었을 텐데. 그러고 싶은 생각이 없으므로 나는 그러지 않고 다시 신도림 쪽을 보면서 몸을 앞으로 들이 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