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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7. 라라미에서 온 사나이(1957)- 떠나는 자의 뒷모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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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7. 라라미에서 온 사나이(1957)- 떠나는 자의 뒷모습은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0.04.27 09: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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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외보다는 집에 있는 시간이 많은 요즘이다. 코로나 19를 이겨내려면 어쩔 수 없다. 사회적 거리 두기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그러다 보니 우울하거나 초조한 마음이 생기기도 한다. 마음을 다스리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럴 때 서부극 하나 보면서 머리를 비워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처음 보는 것도 아니고 어디서 많이 본 듯하니 어려울 것도 없다. 줄거리랄 것도 딱히 없다.

그저 총질 몇 번 한 다음 왔던 길을 되돌아가면 영화가 끝나기 때문이다. 앤서니 만 감독의 <라라미에서 온 사나이>를 두고 이런 평가를 내리는 것은 야박하다. 인정머리 없는 것은 분명하다. 한 줄로 말했으니 그렇지, 길게 이야기하면 해석은 달라진다.

그러니 시작해 보자. 한 사나이가 오는 것은 맞다. 월 록하트(제임스 스튜어트)는 라라미에서 여기로( 여기는 서부의 어디쯤이라고 하자. 인디언 아파치족이 사는 뉴멕시코 쪽에 가까운) 왔다.

온 이유는 빤하다.( 돈이나 여자나 땅이 아니라 복수 때문이다. 그것은 사나이라면 마땅히 해야 할 임무다. 나중에 알려지는데 그는 기병대 대위다) 복수의 대상을 확정하고 그것이 끝나면 윌은 가지 말라고 붙잡아도 라라미로 간다.( 여기서 라라미가 어딘지는 분명히 나와 있지 않다. 그렇지만 반겨줄 사람이 있고 하여튼 가고 싶어 할 만큼 좋은 곳인 곳만은 틀림없다. 마음의 고향이라고나 할까)

윌은 주인공이니만큼 잘생기고 정의롭고 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죽지 않는다. ( 서부극이 다 그렇지 않은가. 그렇다고 통속적이라고 나무라지는 말자) 그는 어린 동생과 기병대원이 아파치족에게 처참하게 살해된 이유를 알고 싶다.( 그리고 이유를 알면 대상을 찾아 복수한다는 설정은 앞서 말했다)

마을에 도착하니 눈에 보이는 것은 다 자기 농장이라고 하는 그 지역 유지가 눈에 거슬린다. 그에게는 아들(알렉스 니콜)이 있고 ( 아들은 사리 분별에 어둡고 거칠면서 아버지의 인정을 받고 싶어 한다) 그를 보좌하는 예비 조카사위쯤 되는 소몰이꾼 빅(아서 케네디)이 있다.( 그는 아들보다는 현명하지만 농장을 물려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래서 농장주에게 불만을 간혹 드러낸다. 자세히 나와 있지 않으나 그가 아들과 함께 아파치에게 총을 판 이유일 것이다)

▲ 임무를 완수한 남자는 그것이 끝나자 자신이 왔던 라라미로 떠나는데 그 뒷모습은 쓸쓸하기도 하면서 여유롭기도 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여자는 마음속으로만 한 사랑을 뒤로 미뤄 두는데 왜 그런지 정확한 이유는 나와 있지 않다. 나중에라도 라라미로 여자가 찾아갈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 임무를 완수한 남자는 그것이 끝나자 자신이 왔던 라라미로 떠나는데 그 뒷모습은 쓸쓸하기도 하면서 여유롭기도 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여자는 마음속으로만 한 사랑을 뒤로 미뤄 두는데 왜 그런지 정확한 이유는 나와 있지 않다. 나중에라도 라라미로 여자가 찾아갈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주인공은 대강 이런 사실을 감으로 안다.

그러면서 동생 살해의 범인이 농장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지 않을까 의심한다. 그러나 그가 형사의 눈으로 이런 사실을 밝혀내는 것은 아니다. 자멸이라고나 할까. 어리석은 아들은 빅에 의해 어이없이 죽는다. 아파치에게 무려 200정에 달하는 자동소총을 판매하는 와중에서 다툼의 희생양이 된 것이다.

그 이전에 아들은 주인공과 서로 총질을 하다 손가락을 다친다. ( 이후 주인공은 그의 부하에 의해 잡히는데 그는 잡은 주인공의 손을 쏜다. 손에는 손으로 응수한 것이다. 이는 서부극에서 비겁한 행동으로 낙인찍히는 전형적인 예다. 등 뒤에서 쏘는 것보다 더 나쁘다. 관객들이 충격을 받을 만하다)

아버지는 아들이 아파치에게 무기를 파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처음과 달리 아버지는 냉혹함보다는 순진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래서 그런지 빅에 의해 낭떠러지로 떨어졌으나 목숨을 건진다) 그 이후 급격히 선한 인물이 된 아버지는 앙숙 관계인 늙은 여자의 보살핌을 받는다.( 전에 약혼자였다.)

사건의 전모는 밝혀졌다. 어린 동생과 기병대원들은 아파치의 총에 의해 죽었고 그 총은 아들과 빅이 거래한 품목이었다.

빅은 자신이 판 그 총으로 아파치 손에 죽는다. 총을 맞고 쓰러진 빅의 등에 화살을 박아 확인사살을 하는 아파치는 잔인한 자의 대명사로 그려진다. (그들이 왜 그러는지에 대한 설명은 구질구질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인지 나와 있지 않다. 아파치에게는 부당한 일이지만 여기서 그것을 설명하는 것은 주제넘은 짓이다)

어쨌든 상황을 완전히 파악한 월 록하트는 언제 라라미로 가느냐는 지겹게 들은 질문에 대한 답을 한다. 그리고 동쪽으로 오면 라라미에 들르라고 그에게 애정을 보이는 빅의 여자에게 말 한 후 총총히 떠나는데 그 뒷모습은 언제나 그렇듯이 쓸쓸하기도 하고 여유롭기도 하다.

국가: 미국

감독: 앤서니 만 감독

출연: 제인스 스튜어트, 알렉스 니콜,아서 케네디

평점:

: 프랑스 말로 데자뷔와 비슷한 기시감은 이 영화도 비켜 가지 못한다. 서부극에서 보여주는 거의 모든 것이 이리저리 버무려 있다. 그러니 킬링 타임 용으로 무난하다.

주인공을 상대하는 여자도 당연히 등장한다. 그런데 결정적인 장면은 생략돼 있다. 호기심을 끈다는 점에서는 성공했으나 해갈을 기대했던 관객들의 기대에는 조금 못 미쳐 아쉬움으로 남는다.

마을에 도착한 후 주인공의 행적을 잠시 살펴보면 주인공은 염전에서 소금을 마차에 싣고 있다. 그곳 사람들에게는 이런 행위가 도둑질이 아니나 외지인에게는 분명 그렇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염전의 주인은 아들을 둔 목장주다. 그 아들은 주인공을 줄을 던져 잡고 그가 타고 온 마차를 불태우고 노새를 죽인다. 소금 몇 삽 푼 것 치고는 죄에 대한 벌이 무겁다. (그만큼 아들이 인정머리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설정이다) 첫 만남에서 이미 적이 결정된 셈이다. 그렇지 않아도 붙어야 할 상대가 이런 못된 짓까지 했으니 주인공과 서로 총질을 한대도 이상할게 없다.

주제가는 무게감이 있다. 슬픈 듯하면서도 아닌 것 같고 무거운 것 같으면서도 가벼운 느낌이 든다. 마치 아프리카에서 선교하기 위해 처음으로 틀어놓은 따라부르기 쉬운 찬송가가 연상된다. 그런가 하면 막 입대한 신병들의 군기를 잡기 위해 부르는 군가처럼 들리기도 한다. 몸의 피를 위로 끌어 올리는 장엄 하면서도 바로 식히는 가벼운 분위기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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