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약뉴스] 대법원이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한 한의사에게 의료법 위반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려 파장이 예상된다.
대법원은 22일 의료법 위반으로 기소된 한의사 A씨에 대해 벌금 80만원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되돌려보냈다.
A씨는 지난 2010년 3월부터 2012년 6월까지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해 환자의 신체 내부를 촬영했으며, 특히 초음파기기로 자궁근종을 진단하고 처방하는 등 초음파 진단기기로 진료행위를 했다.
1ㆍ2심은 A씨를 의료법 위반으로 보고 8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의료법령에서 한의사로 하여금 초음파진단기의 사용을 금지하는 규정은 없다”며 “이원적 의료체계의 목적, 의료행위와 한방의료행위의 개념, 한의학과 서양의학의 진단방법의 차이, 초음파진단기의 원리 등에서 알 수 있는 사정에 비춰보면 B씨가 초음파진단기를 사용해 환자의 자궁, 자궁내막을 확인하는 행위는 한의사의 면허에 포함된 의료행위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2심 재판부도 “초음파진단기 사용 자체로 인한 위험성은 크지 않지만 진단은 중요한 의료행위여서 검사 내지 진단을 하는 과정에서 환자의 상태를 정확히 판독하지 못하면 생명이나 신체상의 위험을 발생시킬 우려가 있다”며 “초음파진단기를 사용하는 검사 및 진단행위는 영상의학과의 전문과목이고, 영상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인체나 영상에 대한 풍부한 지식이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초음파진단기를 사용하는 검사나 진단은 영상의학과 의사나 초음파 검사 경험이 많은 해당과의 전문의사가 해야 한다”며 “초음파 검사는 영상을 판독하는 과정이 필수적인데 이를 위해서는 서양의학적인 전문지식이 필요하므로 초음파진단기는 판독에 있어 서양의학의 원리가 적용될 것을 전제로 개발ㆍ제작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진단의 보조수단으로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하는 것은 보건위생에 위해를 발생시킨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
대법원은 “의료법에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을 금지하는 취지의 규정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한의사가 한방의료행위를 하면서 진단의 보조 수단으로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하는 것은 의료행위에 통상적으로 수반되는 수준을 넘어서는 보건 위생상 위해가 생길 우려가 해당한다고 반증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특히 대법원은 이번 결정이 헌법재판소의 과거 판결에 위반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도 짚었다. 대법원은 “과거 헌법재판소는 수차례에 걸쳐 한의사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한 것인 면회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에 해당한다고 결정한 바 있다”며 “헌법재판소 결정에서 시간이 지났고, 한의과대학의 진단용 의료기기 사용 관련 교육 과정이 지속적으로 보완, 강화돼 왔다”고 설명했다.
또한 대법원은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은 의료법에 규정된 국민의 건강을 보호하고 증진하는 데 기여하고, 의료법의 목적인 국민의 건강을 보호하고 증진하는데 기여한다”며 “헌법에 규정된 의료서비스에 대한 국민의 선택권을 합리적인 범위에서 보장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이번 판결의 판단은 한의사로 하여금 침습의 정도를 불문하고 모든 의료기기를 허용하는 취지는 결코 아니라는 점은 분명히 했다.
해당 판결에 대해 대한의사협회(회장 이필수)는 유감을, 대한한의사협회(회장 홍주의)는 환영의 뜻을 표명했다.
의협 박수현 홍보이사겸대변인은 “굉장히 유감스럽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판결”이라며 “초음파기기는 물리학을 비롯한 과학적 원리 원칙을 바탕으로 현대의학에서의 활용을 상정해 개발ㆍ제작됐다. 영상을 보는데 있어서도 검사를 하는 사람의 숙련도와 전문성에 따라 판독이 달라질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의사들 중에서도 모든 의사가 하는 것이 아니라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영상의학과 등 별도 진료과가 있는 상황인데 이를 배경지식이 전혀 다른 동양철학을 바탕으로 교육과 경험이 부재한 이에게 허용하는 것은 무면허 의료행위에 해당한다”며 “검사 자체의 위험도가 낮다 하여도 검사가 결과가 중요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이번 사건처럼 환자에게 오진하거나 이 초음파를 근거로 잘 못 된 처치가 들어갈 경우 피해를 받게 되는 것은 환자들”이라며 “이 사건은 자궁내막암을 놓치고 치료가 늦어진 명백한 환자 피해 사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건위생상 위해가 아니라고 판단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라고 강조했다.
박 대변인은 이러한 비상식적인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협회는 수단 가리지 않고 총력을 기울여 막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에 반해, 한의협은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결에 환영의 뜻을 표하며, 해당 판결에 따라 한의사들이 국민 건강을 위해 현대 진단기기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법적ㆍ제도적 장치가 하루 빨리 마련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의협은 “한의학의 과학화는 새로운 의료로 탈바꿈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단계로, 실제 현대 과학의 발달에 발맞춰서 현대화하려는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며 “지금까지 수차례 실시된 국민여론조사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한의학의 과학화ㆍ현대화는 국민의 요구이자 의료인으로서 가져야 할 당연한 책무”라고 전했다.
이어 “한의학의 과학화와 현대화에 필요한 도구인 현대 진단기기의 대다수는 의사들이 발견하고 연구한 것이 아니라, 현대 문명 발달의 산물”이라며 “이를 각자 진료에 활용해 환자의 상태를 정확히 관찰하고 최상의 치료 방법을 찾는 것은 현대를 사는 의료인에게 마땅히 보장된 권리이자 의무”라고 강조했다.
지금까지 한의사에게 채워져 있던 현대 진단기기 사용 제한이라는 족쇄를 풀어줄 단초가 된 대법원의 판결은 국민의 건강증진과 보건향상이라는 당면한 국가정책을 해결하고, 국민의 진료선택권을 보장하는 전환점이 될 것이라는 게 한의협의 설명이다.
이와 함께 대한한의사협회는 “초음파 진단기기를 비롯한 현대 진단기기를 진료에 적극 활용해 최상의 한의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데 모든 역량을 집중해 나갈 것임을 천명한다”며 “국민을 볼모로 한 특정이익단체의 눈치를 보지 않는 보건당국의 신속하고 합리적인 후속조치를 촉구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