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뉴스]
뻘 속에서 진주를 발견하면 이런 기분일까. 뜻하지 않은 행운에 잔잔한 미소를 지어 본다. 이경미 감독의 <비밀은 없다>는 개흙 속에 파묻혀 있다 어느 마음씨 착한 어느 어부의 손에 걸려든 마법 같은 영화다.
잔인하고 투박하고 여러 갈래로 흩어져 있지만 결국은 하나로 뭉쳐지는 힘이 대단하다. 일단 내용을 간단하게 살펴보자. 종찬(김주혁)과 부인 연홍(손예진)은 분주하다.
국회의원 선거에 나섰으니 당선을 위해 온갖 공을 들인다. 지역에서 내리 4선을 한 노재순(김의성)을 상대해야 한다. 신인과 노장의 대결은 여러모로 호기심을 끌며 전국적인 관심 지역으로 떠올랐다.
이런 가운에 연홍의 딸이 실종된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가도 소식이 없다. 종찬은 그 와중에도 딸의 실종이 자신의 당락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고심한다. 연홍은 그런 남편과 불화한다.
수사기관도 소극적이다. 가출이 이번이 처음도 아니라면서 단순 사건으로 치부한다. 연홍은 고군분투한다. 이리저리 백방으로 수소문한다. 친구도 만나도 담임도 만난다. 하지만 사건의 실마리는 찾기 어렵다.
굿도 하고 최면술사를 동원하지만 소득이 없다. 이런 가운데 실종자는 숲속에서 처참한 시체로 발견된다. 최악의 상황이 온 것이다. 연홍은 절규한다. 그러다가 이성을 찾고 자신이 스스로 사건 해결에 나선다.
일기를 보고 5만 통이 넘는 이메일을 추적한다. 이 과정에서 딸이 왕따였다는 소식도 듣고 학업 성적이 급상승한 상황에 의심의 눈길을 보낸다. 그리고 딸이 친구와 음악 연습을 하는 외딴곳을 찾는데도 성공한다.
거기서 연홍은 드럼을 치우다 검은 봉지 하나를 발견한다. 거기에 1억 원 현금이 쏟아진다. 밖은 비가 억수로 쏟아지고 그녀는 사건의 실체에 한 발 더 깊숙이 발을 담근다.
결론을 미리 말하면 재미 떨어지나 결국 연홍은 범인을 잡는데 성공한다. 종찬도 선거에서 재순을 따돌리고 당선된다. 이렇게 보면 연홍도 종찬도 문제를 해결한 셈이다.
하지만 이게 다라면 흙 속의 진주가 되지는 못할 터. 사건 해결이 바로 두 사람의 관계를 파탄 내는 결정적 이유가 된다는 것. 딸의 죽음으로 두 사람은 화합하기보다는 영원히 갈라서게 된다는 것.

기왕 친절한 영화평이니 좀 더 설명을 이어가 보자. 딸의 성적이 오른 것은 사전에 시험지를 빼돌렸기 때문. 담임이 그런 짓을 했다. 아니 그런 짓을 하도록 딸과 딸의 친구가 협박했다.
협박의 무기는 동영상. 다름 아닌 아버지와 담임의 불륜 동영상을 딸이 갖고 있었던 것. 협박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담임의 말에 따르면 딸은 악마였다. 차마 할 수 없는 쌍욕을 선생에게 해댔다. 그것도 모자라 돈을 요구했다.
담임은 불륜남 종찬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종찬 역시 이들 협박범을 그대로 둘 수 없다고 판단했다. 돈을 줘도 먹고 떨어질 애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종찬은 살인마를 고용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연홍은 어떻게 알았을까.
그 과정이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차량처럼 덜컹거리고 뒤집어질 정도로 아찔하지만 어쨌든 연홍은 그걸 알아냈다.
한편 연홍 역의 손예진 연기가 대단하다. 드라마에서 보던 얼굴만 괜찮고 연기는 별로였던 그 손예진이 이 손예진 맞나 싶을 정도다.
영화의 기본 정보를 보다 이 영화에 호불호가 갈린다는 사실을 보았다.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우수하다, 그러니 봐서 긴 여운을 즐겨 보라고 권하고 싶다.
다만 너무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것이 눈에 거슬린다. 이제는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 앞뒤 상황 설명만으로도 충분하다. 사회가, 사는 것이 너무 괴롭고 힘든데 영화에서까지 그런 장면을 보는 것이 감내하기 어렵다. ( 영화가 나온 시점을 고려하더라도.)
좀 더 차분하고 덜 자극적이고 덜 잔인했으면 싶다. 영화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사족을 붙이자면 모든 것을 다 담으려는 과한 욕심도 조금 내려 놓았으면 좋았을 것이다.
국가: 한국
감독: 이경미
출연: 손예진, 김주혁
평점:

팁: 중학생들이 겪는 우정과 반항과 사랑과 증오와 광기가 숨 막히게 전개된다.
예진은 <마더>의 혜자가 연상되기도 한다. 카메라 각도와 무표정과 하늘의 배경을 더하면 예진은 나이든 혜자와 다름 아니다.
그건 그렇고 연홍의 딸과 친구가 가진 주체할 수 없는 사춘기의 감정을 어찌 헤아릴 수 있겠냐 만은 추측해 보면 딸과 딸의 친구는 우정을 넘어선 사랑 비슷한 감정을 갖고 있었다.
아버지 차를 운전하는 사랑하는 가난한 친구를 위해 딸은 뭐든지 하고 싶었다. 선거가 끝나고 유학 가면 내 소중한 친구를 누가 지켜 줄까. 돈도 없고 실력도 들통나고 옷도 없는데.
1억 원이 있다면 위안이 될까. 딸은 죽음으로 죄를 면죄 받았다. 살인자와 교사자는 어떤 벌을 받았을까.
흥행에는 참패했으나 작품에서는 성공한 이런 영화가 흥행에도 성공할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