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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2. 흐르는 강물처럼(1992)- 인생은 추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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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2. 흐르는 강물처럼(1992)- 인생은 추억이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5.04.12 10: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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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뉴스]

피할 수 없는 것은 생로병사다. 지금은 아니어도 크고 늙고 죽는다. 95세까지 사신 아버지는 늘 말씀하셨다. 세월 참 빠르다고. 거기에는 인생에 대한 추억과 회한이 담겨 있다.

그런 일은 먼 미국 몬태나주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목사 아버지를 둔 어린 두 아들은 어머니가 해준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낸다.

어린 시절이 있으니 청년과 노년 시절도 있겠다. 그리고 죽음까지도. 아직 거기까지 오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만.

설교를 마친 아버지는 아이들을 강으로 데리고 간다. 플라이 낚시를 가르치고 즐긴다.

아버지에게 낚시는 종교와 같은 하나의 신념이다. 아이들은 자란다. 때는 마침 꽃 피는 춘삼월인지 쑥쑥 자란 아이들은 어느새 청년기로 접어들었다.

동생 폴( 브리드 피트)은 커가면서 점잖고 학구적인 형 노먼( 크레이크 세퍼) 과는 달리 다혈질이다. 나무배로 거대한 폭포를 뛰어넘는 위험한 일을 벌인다.

▲ 형제는 작은 배를 타고 폭포를 뛰어넘는 모험을 벌인다.
▲ 형제는 작은 배를 타고 폭포를 뛰어넘는 모험을 벌인다.

폴은 형을 사랑하나 경쟁에서 지고 싶지 않다. 송어를 잡더라도 더 많이 더 큰 놈을 잡아야 한다.

한편 형 노먼은 미 동부로 떠난다. 시카고까지는 무려 수 천 킬로 미터 떨어진 거리다.

그리고 6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 사이 폴은 그 지역의 신문기자로 활동한다. 둘의 재회는 형제의 우애가 어떤 것인지 보여준다. 동시에 형제간의 갈등과 경쟁도.

고향에 왔으니 당연히 낚시가 빠질 수 없다. 둘은 강으로 달려간다. 물살에 포말은 흰 색으로 부서지고 해를 받은 낚싯줄은 다이아몬드처럼 빛난다.

높은 산의 눈은 그대로인데 아래는 온통 꽃밭이다. 왕년에 낚시깨나 즐겼던 필자도, 지금은 낚싯대를 놓은 지 오래나 그곳이라면 한번 던지고 싶은 강한 욕망에 끌릴 만큼 멋진 장소다.

그곳에서 노먼은 보았다. 폴의 플라이 낚시가 예술의 경지에 도달했음을. 자신을 넘고 아버지마저 뛰어넘은 폴은 이제 부모의 품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이때는 그야말로 오마이 해피타임이다. 하지만 인생은 해피만 있는 것이 아니다. 웃고 떠들고 즐겼으면 이제는 불행의 시간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것이 인생이다.

동생은 술과 여자와 도박에 빠져 있다. 형이 보기에 그것은 옳지 않다. 하지만 목사 아버지도 어쩌지 못하는 동생을 형이 어쩔 수 있겠는가.

원주민 여자를 애인으로 둔 폴은 곳곳에서 막히는 그녀의 제한된 입장에 불만이다. 주먹을 휘둘러 철창신세를 진다. 불의를 참지 못하는 성격이라고 해둘까.

그는 곧 죽으니 죽기 전에 조금은 의로운 인물로 평가하는 것 역시 인지상정일 수 있다. 어느 날 폴은 숲속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권총으로 맞아 죽었고 그 사실을 노먼은 아버지에게 알린다.

어쨌거나 동생은 죽었다. 하지만 산 나머지 가족은 또 살아야 한다. 노먼은 시카고 대학 문학담당 교수로 임명돼 동네 댄스파티에서 만난 여자와 동부로 떠난다.

국가: 미국

감독: 로버트 래드포드

출연: 브래드 피트, 크레이크 세퍼

평점:

: 또 시간이 흘렀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세상을 떠났을 것이다. 노먼이 아버지의 나이가 됐으니. 그는 고향으로 돌아와 소중한 추억이 담긴 강가에서(영화는 몬태나가 아닌 캐나다 보우강에서 촬영됐다. 그 강을 보아서인지 영화가 더 실감났다.) 플라이 낚시를 한다.

한 가족의 일생이 이런 식으로 마무리되는 로버트 래드포드의 <흐르는 강물처럼>은 봄의 기운이 활짝 핀 이 계절에 딱 어울리는 영화다.

봄이 있으면 여름과 가을과 겨울이 있다. 계절이 한 바퀴도 돌면 누구나 인생의 종착점에서 선다. 95세까지 사신 아버지와 필자도 형과 낚시를 한 적이 있다.

강이 아닌 바다에서 송어 아닌 망둥이나 간혹 점농어를 잡았다. 멋진 플라이 낚싯대 대신 대나무로 만든 것이었지만 낚시의 매력만큼은 뒤처지지 않았다.

설산도 없고 야생화 천지는 아니었으나 끝없이 펼쳐진 하얀 백사장과 그 위에 피어난 피보다 진한 해당화가 일몰과 겹쳐지던 풍경은 지금도 지워지지 않는 나의 소싯적 기억이다.

영화처럼 종교로 낚시를 의식하지 않았다. 허나 나에게 8년 전까지만 해도 낚시라면 취미의 중의 취미였다. 아버지와의 어릴 적 추억이 없었더라면 과연 내가 성인이 된 후에도 그런 손맛을 보는 즐거움을 알았을까.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하는 질문을 받는다면 낚시와 같은 추억으로 산다고 답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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