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뉴스] 민주 법치국가에서 실정법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인간 존엄이지만, 우리나라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의 해석은 그 본질을 왜곡하고 있어, 의료형법 영역 전반에 걸쳐 모호성과 무체계성을 야기하고 있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단국대학교 법과대학 이석배 교수(법학박사)는 최근 의료법학회 월례학술발표회에서 '의료형법 영역의 체계적 문제-합목적성에서 기인한 모호성과 무체계성에 대한 비판적 관점'이라는 주제 발표를 통해 이같이 주장하며 사법부의 헌법 해석과 그로 인한 의료 관련법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 교수는 먼저 우리나라 헌법 제10조는 인간 존엄을 핵심 기본권으로 규정하며, 이는 모든 국가권력의 기본권 보호 의무를 실정법상 권리와 의무로 만든다고 설명했다.
다만 인간 존엄은 너무 추상적이어서 통일된 개념 정의가 어렵고, 때로는 특정 사안에서 양쪽 입장 모두의 논거로 사용되는 빈 공식으로 전락하기도 한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이를 두고 헌법학계에서는 인간 존엄이 기본권인지 헌법의 지도원리인지 논쟁이 있으나, 구체적 구성요건에서는 해석의 방향을 제공하는 지도원리 역할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따.
또한 이 교수는 인간 존엄의 내용은 인격의 고유한 가치에 대한 존중으로, 그 근거는 자유롭게 스스로 결정하고 발현하는 인격성에 있다고 강조했다.
결국, 인간이 인격체로서 자율적인 인격의 발현, 즉 자기결정이 존엄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아울러 이러한 자기결정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생명ㆍ신체ㆍ정신적 완전성 유지가 전제되야 한다고 부연했다.
이 가운데 이 교수는 헌법재판소가 생명권을 헌법상 명문 규정 없이 모든 기본권의 전제로 보는 해석 자체는 타당해 보이지만, 그 논리 구조가 우리 헌법 제10조의 해석이라기보다는 독일 기본법 제1조(인간 존엄)와 제2조(인격발현권, 생명ㆍ신체불가침권)의 관계에 대한 도그마를 그대로 옮겨온 것이라고 비판의 날을 세웠다.
특히 독일 기본법 제2조 2항은 생명과 신체의 불가침에 대한 권리를 하나의 권리로 통합적으로 규정하고 이를 생명권으로 통칭하는 반면, 우리 헌재와 대법원은 생명권과 신체불가침권을 분리하고, 신체불가침권을 헌법상 신체의 자유에서 도출한다고 해석하고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신체의 자유는 신체활동의 임의성에 대한 권리이지, 신체의 존재 자체를 보호하는 신체불가침권을 여기에서 도출하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라며 “생명ㆍ신체불가침권은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권리로서 인간 존재에 관한 권리로 다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잘못된 헌법 해석이 환자의 자기결정권에 대한 오해로 이어진다는 지적이다.
이 교수는 “환자의 자기결정권은 그 용어가 주는 인상 때문에 인격발현권과 관련된 적극적 권리로 오해되지만, 본질은 원하지 않는 의료행위를 거부할 수 있는 소극적 권리이며, 그 헌법적 근거는 인간으로서 지위를 유지시켜주는 '생명'과 '신체'에 대한 불가침권에서 도출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헌재는 자기결정권을 인격발현권에서 파생되는 것으로 보며, 생명에 대한 처분권은 환자의 자기결정권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본다"면서 "대법원 역시 환자의 자기결정권 보장을 주장하지만, 소극적 측면에서도 생명을 자기결정 대상에서 배제하고, 치료 거부를 통한 죽음을 죽을 권리의 행사로 오인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는 생명권과 생명을 동일시하고, 생명 주체의 자율성을 무시한 채 제3자가 생각하는 이익을 강요하는 것”이라며 “의료계에게는 환자가 거부해도 강제 치료를 해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게 한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대법원이 판결한 의료행위 중지 의무와 생명보호 의무의 충돌이라는 논리에 대해서는 이익충돌과 의무충돌을 구별하지 못한, 의무충돌 법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판단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그는 “이러한 헌법 해석의 오류가 구체적으로 연명의료결정법에서의 환자 자기결정권 존중 미흡과 입법적 문제점, 의료법상 의료행위 개념의 모호성 및 진료거부죄의 해석 문제, 그리고 응급의료법에서의 응급의료 거부ㆍ기피와 중단에 대한 처벌 불균형 등 개별 의료 관련법에서 다양한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구체적으로 "연명의료결정법에서 치료 효과 없이 임종 기간만 연장하는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임종 과정 환자에게만 중단가능하게 한 것은 법의 목적(환자 최선 이익 보장, 자기결정 존중)에도 반한다"면서 “가족 동의가 있다면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연명의료 중단이 가능하게 한 조항 등은 불쾌한 법질서의 요청”이라고 꼬집었다.
연명의료결정법 제4조의 다른 법률 우선 적용 조항과 과거 존재했던 제39조 제1호(연명의료중단 대상 아닌 자에게 시행 시 처벌)의 삭제 과정 등을 언급하며 입법 과정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그는 "의료법에선 핵심 개념인 의료행위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없어 의료행위는 의료인만 할 수 있고, 의료인은 면허로 의료행위를 독점하는 순환논증에 빠져있다”며 “이는 무면허의료행위죄 적용 범위의 불명확성을 야기하고 명확성ㆍ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의료법과 응급의료법상 진료 거부 관련 조항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의사가 진단에 따라 적응증이 없는 의료행위를 거부하는 것은 진료거부에 해당하지 않으며, 환자가 의료행위를 방해하거나 비협조하는 경우에도 정당한 거부 사유가 된다”고 강조했다.
또한 "응급의료법은 제6조 2항은 응급의료 거부ㆍ기피를 금지하고 높은 형량으로 처벌하지만, 제10조는 응급의료 중단을 금지하면서도 아무런 제재 규정이 없다"면서 “거부ㆍ기피와 중단은 형법적 관점에서 큰 차이가 없음에도, 중단에 대한 처벌 규정이 부재한 것은 입법 기술상 오류이거나 응급의료 의무를 최소한의 조치로 한정하려는 의도로 해석될 수 있다으며, 이로 인해 현행법상 응급의료 중단은 처벌이 불가능한 모순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한약사 제도에 대해선 의약분업 논의 과정에서 한의사의 의약분업을 전제로 도입했으나, 한의계가 의약분업을 하지 않으면서 한약사의 역할이 모호해졌다고 질타했다.
이로 인해 약사법상 한약사도 약국개설이 가능해 약사 고용 후 양약 판매가 이뤄지거나, 한약사가 백미처방 외 조제가 불가능한 문제 등 면허 범위와 관련된 혼란이 지속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 교수는 “의료 영역에서 특정 직역의 이익이 법률에 그대로 반영되는 사례가 잦고, 일관성 없는 보건의료정책으로 인해 법률 해석과 분쟁 해결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면서 “근본적으로 인간 존엄과 환자의 자기결정권에 대한 헌법적 이해를 바로 세우고, 이를 바탕으로 의료 관련 법체계를 합리적으로 재정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