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뉴스] 건물 내 특정 형태의 병원 입점을 신뢰하고 약국 점포를 분양받았으나 실제 병원 운영이 약속과 달랐다면, 이는 계약의 중요 부분에 관한 동기의 착오에 해당해 약국 분양계약을 취소할 수 있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대구고등법원은 최근 약사 A씨가 건물 분양사 B사, 분양대행사 D사(대표 E), 의사 F씨 등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이 같이 판결했다.

약사 A씨는 2021년 9월경 H건물 1층 점포를 약국 개설 목적으로 B사로부터 약 13억 5000만원에 분양받았다.
A씨가 해당 점포를 선택한 주된 이유는 H건물 2, 3층에 내과 전문의 최소 2명이 상주하는 연합내과가 입점한다는 설명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실제 계약 당시 건물 외벽에는 연합내과 입점확정ㆍ약국분양문의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고, B사의 분양 업무를 대행한 D사 대표 E씨는 A씨에게 H건물 201호와 301호를 임차한 외과 의사 F씨의 임대차계약서를 제시했다.
이 계약서 특약사항에는 연합내과로 개원할 예정이며, 의사 2명 이상으로 구성해 개원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A씨가 약국을 개국한 2021년 11월 이후, F씨가 임차한 점포에는 같은 달 23일 산부인과 전문의 1명과 내과 전문의 1명이 진료하는 M의원이 개원했고, 그나마 약 한 달 만인 그해 12월 31일 문을 닫았다.
A씨가 기대했던 내과 전문의 2명 이상으로 구성된 연합내과는 결국 입점하지 않았다.
이에 A씨는 분양사 B사 등을 상대로 “병원 입점 관련 기망 또는 착오를 이유로 분양계약을 취소한다”며 분양대금 반환 등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와 관련, 항소심 재판부는 A씨의 동기 착오 주장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의약분업 이후 약국 매출과 수익에서 병원 처방전 조제 비중이 훨씬 크므로, 같은 상가 건물 내 어떤 병ㆍ의원 입점 여부는 약국 분양계약 체결을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전제했다.
이 가운데 재판부는 ▲건물 외벽 현수막 내용 ▲F씨 임대차계약서의 연합내과 2인 이상 특약 ▲분양대행사 대표 E씨의 구체적 설명 ▲해당 점포의 약국 용도 지정 ▲해당 점포의 평당 분양가가 인근 1층 다른 점포보다 월등히 높았던 점 등을 근거로 “A씨가 내과 전문의 2명이 근무하는 연합내과가 상당 기간 진료하리라는 동기의 착오를 일으켰고, 이 동기가 분양사 측에 표시돼 계약의 내용이 됐다”고 판단했다.
반면 분양사 B사는 “A씨가 분양계약서에 연합내과 개원 관련 내용을 명시하지 않았고, B사에 직접 확인하지 않았으므로 중대한 과실이 있다”고 맞섰다.
그러나 재판부는 “분양대행사는 B사의 수임인에 해당하며, A씨가 수임인의 설명을 신뢰한 점을 중대한 과실로 보기 어렵다”고 일축했다.
이에 법원은 분양계약이 적법하게 취소됐다고 판단, B사에 원상회복으로 분양대금 반환과 해당 점포의 소유권이전등기 말소등기절차 인수 의무를 명했다.
한편, 법원은 분양대행사 D사와 그 대표 E씨, 최초 병원 임차인이었던 의사 F씨에 대한 A씨의 주위적 청구 관련 항소는 기각했다.
다만 의사 F씨에 대해서는 A씨가 항소심에서 추가한 예비적 청구를 일부 인용, 5780만원을 배상하도록 했다.
이는 F씨가 최초 병원 개원과 관련해 A씨에게 제공한 설명이나 약속 등에 대해 법원이 별도 책임을 일부 인정한 결과라는 평가다.
이 판결에 대해 한 법조계 관계자는 “이번 판결은 병원 입점을 조건으로 상가를 분양받는 경우, 해당 조건이 계약의 중요 부분으로 인정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며 “이에 대한 착오 발생 시 계약 취소까지 가능함을 명확히 한 사례로, 향후 의료 관련 상가 분양계약 분쟁에서 중요한 참고 자료가 될 전망”이라고 평가했다.